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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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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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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두 달쯤 전이다. 한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평소와는 많이 낮은 목소리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교수님! 제가 000 박사님 기념 사업회에 일부를 감당하고 싶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나는 “무슨 소리냐”고 하자.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가 몸이 안 좋아서 혹시 어떻게 될 줄 모르니, 가지고 있는 것이라야 얼마 안 되지만 정리를 하고 싶습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분간 홍천에 있는 조용한 곳을 찾아서 좀 쉬겠노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혹스러웠지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우선은 몸을 좀 회복하고 이야기 하자!”는 정도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는 홍천의 모처로 갔고, 그의 친구 한 사람이 그가 갈 곳을 찾아본다고 연락이 왔다. 뭔가 결정이 되면 연락을 달라고 하는 말을 그 친구 목사님께 하고는 시간이 두어 달 지났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그 목사님의 별세를 알리는 부고가 문자로 전해왔다. 결국, 지난 번 전화 통화는 그와의 마지막이었던 셈이다. 나는 <인천기독교역사문화포럼>을 마치고 이내 춘천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그의 주검을 확인해야 했다. 그와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잠시 그의 주검 앞에서 그의 지나온 시간들과 함께 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자신의 병을 알기 전까지 서울에 있었던 우리 연구소까지 춘천에서부터 찾아와서 열심히 배우기를 힘썼다. 그런가 하면 바른 신학(신앙)을 위한 올곧은 의식을 보여주면서 한국교회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어주었다. 신학교를 졸한 후 선교사로 활동을 하다가 귀국하여 민간인이지만 군인교회를 섬기면서 젊은 장병들의 신앙을 살피고 복음전도를 위한 열정을 가지고 군인교회를 섬기면서 어렵게 지내왔다. 그러면서도 시간을 내서 교단의 신학세미나와 별세하신 교수님의 장례식과 기념 사업회까지 찾아와서 주관하는 내게는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런데 그가 발병한 사실을 알게 되고 수술과 회복을 위한 시간까지 불과 1년이 겨우 되는 시점에 그는 더 이상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며칠 전 그에 대한 생각이 났었다. 어떤 상태에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가정형편도 어떤지 알 수 없어서 한 번 찾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별세 소식이 먼저였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아쉬움 때문에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춘천이라고 하는 낯선 곳에서 장병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영생활을 돌보기를 기뻐하며 지냈던 마지막 사역지에서 이 땅에서의 생을 마감한 그를 생각하면 주님의 뜻을 섬기기 위한 자신의 삶을 참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다.

그는 늦게 소명을 받아 선교사로서 헌신을 했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밖에 적이 않지만 항상 제자로서 배움의 자세로 나를 대했고, 자신의 일에 성실하게 임했다.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배우려고 하는 모습이 귀했다. 기회만 되면 배움을 위해서 춘천에서 서울로, 안양으로 열심히 쫓아다녔다. 깨달음의 기쁨과 필요를 강하게 느끼면서 배움에 대한 열정이 늦게 시동이 걸린 것인지 모른다. 선교와 섬김의 현장에서 그가 직면했던 것들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깨닫게 되었기에 그의 생애에 있어서 마지막 시간들은 배움을 위해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전화를 받은 후, 그와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과 아쉬움, 그리고 허전함이 나로 하여금 춘천으로 향하게 했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 여기까지였음을 확인하게 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영정사진으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 해 여름 췌장암 수술을 한 다음 겨우 몸이 회복될 즈음 지팡이를 짚은 채 나타났을 때 그의 모습은 먼저 별세의 길을 간 그가 내게 준 무언의 메시지였다. 더 늦지 않게 주어진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우치는 것과 그것을 섬김으로 사는 것, 그것이 살아있는 자들에게 주어진 기회이고 기쁨인데,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에게 받은 마지막 전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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