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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여행 - 이희우 목사와 함께 엘리야를 따라가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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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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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사르밧까지 가서 여러 날을 숨어서 지내던 엘리야, 이번에는 “가서 보이라”(Go show yourself)는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자기 발로 아합 왕을 만나겠다고 나섰다. 엘리야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17절)로 여긴 왕이다. 하지만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바알을 좇은 ‘바로 당신과 당신의 아비 집’(18절)이라며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다 모아 영적 대결을 하자고 제안한다(19절). 아합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지중해 연안 갈멜산(해발 552m)에서 최고의 영적 대결이 벌어졌다.

 

1) ‘여호와의 말씀’에 따른 결단

지명수배자가 스스로 아합에게 나아가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위험한 자기노출이었다. 하지만 엘리야는 비를 지면에 내리겠다는 약속과 더불어 아합에게 보이라는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결단한다(1절). 당초 그릿시냇가로 간 것도(17:2-3), 우상숭배의 중심지 같은 시돈의 사르밧으로 피신했던 것도 다 여호와의 말씀 때문이었다(17:8-9). 사실 까마귀들이 먹인다는 말씀(17:4)이나 과부가 공궤한다는 말씀(17:9)도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말씀이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거나 “죽더라도 고향에 묻히고 싶다.” 또는 “대도시도 아닌 작은 마을이라면 위험부담이 너무 크고, 과부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는 등 일체 항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냥 노출도 아니고, 영적 대결, 지금 엘리야에게 자기 입장은 중요하지 않다. 자존심은 사치일 뿐이다. 합리적 의심이나 실체적 진실이 구원을 주는가? 믿는 자들의 구원과 진정한 승리는 언제나 말씀으로부터 오는 법, 그는 오직 말씀에 운명을 맡기고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이 있는 갈멜산으로 향했다.

 

2) 450:1의 영적 대결

이세벨이 이스라엘 아합 왕의 아내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난리가 났었다. 사마리아에 바알 사당이 지어지고, 온 나라에 바알을 위한 단과 아세라 목상이 만들어졌다. 그뿐인가? 이세벨을 따라 온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인이 나라를 휘젓고 다녔다. 결국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고 말았다.

영적 대결 소식을 듣고 백성들도 갈멜산으로 모여들었다. 시돈사람의 신이자 농경신인 바알이 진짜 신인지 하나님이 진짜 신인지를 결판하는 영적 대결,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이제는 좇을 신을 결정하라고 촉구하는 빅 이벤트였다. 먼저 아세라 선지자들의 대대적인 응원 속에 바알신을 숭배하던 선지자 450명이 아침 일찍부터 제사를 드리고, 광란의 춤을 추고, 피까지 흘리는 자해를 하며 바알을 부르는 난리굿을 벌였다. 분위기는 중과부적(衆寡不敵),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듯했다. 엘리야는 혈혈단신(孑孑單身), 최소한 450:1로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3) 불로 응답하신 여호와

그런데 “바알이여, 응답하소서. 바알이여 응답하소서.” 이른 아침부터 제사를 드리며 춤을 추고 자해까지 했지만 정오가 되어도 도무지 응답이 없다. 바알은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었을 뿐, 그리워해도 소용이 없고, 울부짖어도 소용이 없다.

반면에 엘리야는 기도를 시작한지 채 2분이나 걸렸을까?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36-37절), 히브리어로 총 35개의 낱말에 불과한 짧은 기도를 드리자마자 하나님은 즉시 불로 응답하여 제단에 벌여놓은 송아지를 다 태우고 12동이를 부어 흥건한 도랑의 물까지 다 핥아버리게 하셨다(38절). 그리고 450명의 바알선지자들은 산 밑 기손 시내에서 전원이 죽임을 당했고, 하나님께서 큰 비까지 주셔서 3년 6개월의 기나긴 가뭄이 다 해소되었다. 갈멜산은 무너졌던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수축하며 ‘하나님의 포도원’이라는 명성을 되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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