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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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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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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안식 후 첫날 저녁,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들은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이미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열 명의 제자들이다. 숫자가 열 명인 것은 24절에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라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제자라는 명칭 속에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을 닫았다”고 했다(19절). ‘닫혔다’는 단어는 ’kekleismenwn’, 이는 ‘닫다’ ‘가두다’라는 뜻을 가진 ‘kleiw’의 과거 분사형으로 그 장소에 아무도 들어올 수 없도록 문을 걸어 잠갔다는 뜻이다. 요한이 26절에서도 “문들이 닫혔는데”라고 또 다시 반복한 것을 보면 밖에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대제사장, 바리새인, 로마군병, 빌라도 총독, 헤롯의 세력들에 대한 제자들의 두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홀연히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다. 문을 걸아 잠갔다는 기록을 볼 때 통상적인 방법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신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기록자 요한이 부활하신 예수께 닫혀 있는 문은 하등의 장해가 되지 않았음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19절, Εἰρήνη ὑμῖν), 통상적인 히브리 사람들의 인사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여기서의 인사는 단순한 관례적 인사 이상의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지난 금요일에 있었던 제자들의 배신과 비겁했던 행위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책망이나 비난이 마땅한 상황 아닌가. 제자들 입장에서는 배신의 죄책감과 수치심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받을 질책 때문에 결코 마음이 편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평안을 말씀하셨다. 이 인사는 죄와 악의 세력에 대한 완전한 승리의 선언이자 용서를 내포한 인사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기도 하셨다(누가는 ‘손과 발’이라고 기록했다- 눅24:39). 요한은 보여주신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변화하셔서 즉각 알아보기 어렵다 해도 같은 예수님이심을 확신시키기 위해서는 상처를 직접 보여주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보이시니’(ἔδειξεν)는 제1부정과거 능동태 직설법, 아직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지 않아 못자국과 군병들이 찌른 창자국이 남아 있는 몸이었다는 뜻이고, 영으로만 부활했다는 견해와 실제적으로 인간의 육체를 입고 계시지 않았다는 가현설(假現說, Docetism)이 허구임과 동시에 육체적으로 부활하셨음을 입증하기에 충분한 증거인 셈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즉각 인지하지 못하고 공포에 사로잡혀있던 제자들은 그제야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다고 한다. 제자들이 기뻐한 것은 돌아가셨던 주님을 다시 사신 채로 만나 뵙게 된 것과 죽음의 공포와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 평강을 누릴 것을 주님으로부터 보장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은 또 다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하셨다. 반복은 강조, 모리스는 진정한 평강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결과로 오는 것이기 때문에 평강을 강조한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예수님은 드디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I am sending you)며 제자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주셨다. 아버지께서 자신을 당신의 대표자로 보내셨듯이 그들을 자신의 대표자로 보내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같은 인간적인 모습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능력까지 주신다(22절).

그 능력은 ‘숨을 내쉬며’라는 창세기 2장 7절과 에스겔 37장 9절의 표현과 같은 동의어로 주신 ‘성령’, 이는 ‘창조와 새로운 생명’ 차원의 능력이며 사명 수행을 위해 구비할 쟁기일 것이다. 그런데 모리스는 “성령을 받으라”라고 하신 본문이 대부분의 사본에 “그들에게”라는 어귀가 없다며 이는 장차 올 전체 교회에게 주시는 집합적인 선물(a collective gift)임을 강조한 요한의 의도적인 기록이라 했다. 부활의 주를 만난 교회는 성령의 도구로서 23절을 토대로 세상을 향한 은혜의 선포와 심판의 경고를 담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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