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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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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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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4복음서에서 부활 기사는 절정 부분이다. 그러나 복음서마다 기사 내용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 요한복음서에는 다른 복음서에서 다룬 사건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목도한 사건들을 독자적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 무덤’을 강조한 점에 있어서는 공관복음서와 다르지 않다. ‘빈 무덤’은 4복음서가 공히 다룰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뜻이다.

요한은 먼저 막달라 마리아가 겪은 이야기를 언급했다. 마태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마28:1)의 동행을 언급했고, 마가는 이 두 마리아와 살로메(막16:1), 누가는 두 마리아와 요안나(눅24:10)가 부활의 아침에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찾아온 동행자였음을 말했지만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 외에 다른 여인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2절에서 ‘우리’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막달라 마리아를 특별히 부각시켰다. 그럴 말한 특별한 인물이 아닌 것 같은데… 아마 하나님의 관점이 우리의 관점과는 다름을 언제나 간과하지 말라는 뜻인 듯하다.

다른 여인들도 함께 동행 했던 것은 맞는 것 같다. 1절에서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라는 표현도 막달라 마리아가 혼자 무덤으로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케 하는 표현이다. 절기 때였기에 예루살렘은 방문객으로 혼잡했고 상당수의 낯선 사람들이 야영하는 상황이었기에 그 시각에 성문 밖으로 여인 혼자 나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공관복음의 기록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에 바르기 위해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왔다고 했다. 니고데모가 넉넉한 향품을 사용했는데 왜 여인들이 또 향품을 가지고 왔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간에 쫓겨 니고데모가 가지고 온 향품을 다 사용하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완벽한 장례가 아니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향품 발라드리는 일을 마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여인들은 안식일이 끝나기만 기다리다 새벽에 달려왔던 것이다.

그런데 웬 일?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이 옮겨져 있었다. 그 큰 돌을 자기들의 힘으로는 옮길 수 없다는 염려를 하며 왔기에(막16:3) 아마 눈에 확 들어왔을 것이다. 마리아는 즉각 남자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로 달려갔다(2절).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하기는 했어도 여전히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었던 것 같고,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는 기록자인 사도 요한 자신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마리아는 누가 주님의 시신을 임의로 취한 것으로 여겼다. ‘사람이’(They)라고 했던 것은 아마 예수님의 원수들 또는 대제사장의 하속들의 소행으로 여겼던 것 같다.

두 제자는 더 들을 것도 없이 즉각 뛰었다. 자기들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베드로가 먼저 일어섰고 다른 제자도 가 보기로 마음을 먹고 같이 달렸다. 그런데 요한은 은근히 ‘그 다른 제자’가 먼저 무덤에 이르렀음을 부각시켰다. 젊었으니 먼저 달려가는 게 당연한데… 그러나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지만 들어가지 못했고 베드로는 도착하자마자 거침없이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두 사람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무덤으로 출발할 때도 베드로의 선도를 기다리고, 무덤에 들어갈 때도 베드로를 뒤따라 들어간 요한은 아마 내성적이었던 반면, 매사에 거침이 없었던 베드로는 외향적이고 매우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요한은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머리에 썼던 수건은…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고 했고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었다고 했다. 시체를 쌌던 모양대로 천들이 감긴 상태를 보면 몸만 빠져나온 것, 도둑이 시체를 훔쳐간 건 아닌 게 확실하다. 믿었다고 했으나 부활을 믿었다기보다 마리아의 말(2절)을 믿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요한은 “그가… 다시 살아나야(must)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라고 했다. 여하튼 빈 무덤은 2천 년 전 현장에 남겨진 명백한 증거들과 목격자의 증언으로 등불처럼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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