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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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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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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요한은 예수께서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신 후에도 제자들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각각 예상을 뛰어넘는 용기로 예수님의 주검 앞으로 나아왔음을 밝힌다. 지금까지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인사들이다. 요한은 그들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Joseph of Arimathea)과 일찍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고데모(Nicodemus)라고 구체적으로 이름까지 공개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산헤드린(Sanhedrin) 의원으로서 ‘존경받는 자’이자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린 자’였다(막15:43). 그러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숨어있던 사람이다. 니고데모 역시 ‘관원’과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밤중에 ‘구원에 관한 갈급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왔던 인물이다(요3장). 그 역시 드러나게 믿지 못했던 사람이다. 의원이란 신분상의 이유도 있었으나 요한은 그 이유를 출교 등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다(요12:42).

그런데 참혹한 죽음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진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일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유대인들의 요구대로 군병들을 시켜 예수의 다리를 꺾으라고 한 집행권자 빌라도에게 당당하게 나아가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겠다.”고 허락을 구한다. 필로(Philo Judaeus)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가 ‘고집 센 강탈자’, ‘잔인한 포학자’로 묘사하는 빌라도, 유대 지도자들의 사주를 받은 군중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판결을 바꾼 그 비열한 사람이 어떻게 나올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모두가 도망치고 흩어진 상황에서 분연히 일어나 주검이 된 예수께 사랑을 표현한다.

이제는 영웅의 모습도, 기적을 베풀고 위대한 설교에 엄청난 군중을 이끄시는 모습도 아니다. 터지고 찢기고 찔려서 만신창이가 된 싸늘한 시체 예수님일 뿐이다. 부자(富者)여서 아쉬운 것도 없다. 모른 체, 상관없는 체, 무심한 체 해도 그만인 그 상황에서 빌라도의 허락을 받고 자신의 손으로 예수님을 모신다. 미리 장만해 두었던 바위를 뚫고 만든 자신의 새 무덤을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제공했다(마27:57-60; 막15:43; 눅23:50-53). 아리마대 사람 요셉. 이 일 외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이름이지만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이름이 되었다.

한편 밤에 몰래 예수께 찾아와 거듭남에 대한 감동적인 가르침을 받고도 드러내 놓고 예수님을 만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숨죽이며 은밀한 관심을 보이던 니고데모도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더 깊이 깨달았던 모양이다. 비록 예수님을 직접 만났을 때 바로 결단하지는 못했어도 서서히 마음이 열렸던 것 같다.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 있던 초막절 끝날, 무리들이 ‘그 선지자’(신18:15), 즉 그리스도라 할 때 그리스도는 갈릴리에서 나올 수 없다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하속들을 시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자 예수님의 말을 듣고 행하시는 것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법적 절차의 하자를 지적(요7:50-52)하고 나섰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니고데모는 그저 바른 소리하는 수준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공개적으로 나서서 장례를 치르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당당히 함께 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몰약에 침향을 섞은 장례용품을 백 근쯤 가져왔다고 했다.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그것을 “왕의 장사에 해당할 만큼의 넉넉한 향료”라고 했다. 몰약(Myrrh, σμἰρνα)은 값 비싼 향수요 주요 무역상품이자 아름다움과 사치를 의미하는 장례용품이며, 침향(Aloes, ἀλόη)은 침향목에서 뽑아낸 향료이다. 요한은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하면서 예수님의 왕권을 또 다시 강조하고 있다. 모리스는 예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하실 때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신 것(3:3)이 그의 심중에 남아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유대인들이 죽은 자에게 적절한 장례를 베풀어주는 것을 매우 중요한 일로 생각했기에 두 사람이 장례를 위해 나선 것은 위기 상황에서 드러난 신실한 신자의 모습, 이는 공개적으로 예수님과의 관계를 시인한 실로 아름다운 헌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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