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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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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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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구절초가 파스텔 톤의 꽃을 피울 때가 되면 불어오는 바람이 한층 시원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청초한 모습의 꽃대가 옅어지는 초록의 주변과 조화를 이루어 한 층 아름답다. 그 즈음 행동이 느려지기는 했지만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서 찾아드는 꿀벌을 만날 수 있다. 겨울 식량을 갈무리하기 위해서 찾아드는 벌들이 구절초 주변을 맴돈다. 소문을 들었는가, 햇살이 내리는 구절초 꽃잎에는 녀석들이 바쁜 모습이다.

 

지난여름 찌는 듯 더웠던 기억을 어느 새 잊었는가. 햇살을 따라 구절초 핀 언덕 너머로 발걸음을 옮긴다. 가을이 깊어진 벌판의 끝자락에 억새와 갈대가 손짓한다. 이어지는 길을 따라 그들의 환영인사를 받으며 걷는다. 그 끝으로 이어지는 서해의 갯벌은 여유롭다. 갯벌에 터전을 마련하고 살아가는 생명들이 나를 반긴다. 비록 나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잠시 놀라서 숨어들었지만, 다시 고개를 내밀고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분주한 발짓으로 먹이를 챙긴다. 녀석들의 수고로움이 인간들이 버린 온갖 오물을 정화한다는 사실을 안 다음부터는 미안한 마음이 더 하다. 그럼에도 인간이 나타나면 깜짝 놀라 숨어들어야 하는 녀석들의 작은 심장은 일시에 비상사태가 된다. 미안한 마음이다.

분주한 발놀림은 겨울을 준비하기 위한 부지런함이다. 성엣장이 밀려오면 더 이상 먹이활동을 할 수 없으니 부지런히 에너지를 축척해서 겨울을 나야 한다. 녀석들의 생존을 위한 부지런한 행동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방해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겨울이 오기 전 부지런하지 않으면 겨울을 나는 동안 동사 내지 아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잠시 녀석들의 환영(?)을 받느라 머뭇거리다가 갯벌로 이어지는 바다를 향해 시선을 옮긴다. 가을을 따라서 걷던 발걸음인데, 갯벌 생명들의 환영을 받느라 한눈을 팔았는가. 멀리 갯벌에 자리한 또 다른 생명들이 가을 인사를 한다. 나문재다. 염생식물인 나문재는 가을이 깊을수록 빛깔이 곱다. 진홍빛으로 옷을 갈아입으면서 가을의 깊어감을 드넓은 캔버스에 점점이 채색을 해 놓았다. 짙은 무채색에 가까운 갯벌에 진홍빛 나문재는 군락을 이루어 조형미까지 더한 가을을 그려놓았다.

삭막해지는 가을 끝자락, 텅 빈 갯벌에 나문재가 없다면 쓸쓸하고 건조한 곳이련만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서 열심히 먹이사냥을 하고 있는 동안 나문재는 갯벌의 가을을 만들어주고 있다. 하기야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무더운 여름 내내 주목도 받지 못한 채 거기에 있었다. 먹을 것이 풍성해진 요즘 나문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특별하다. 나문재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것에 관심을 가질 것을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이리라. 가난했던 시대에 봄날 나문재 새싹은 요긴한 반찬거리가 된다. 살짝 데쳐서 고추장으로 버무리면 푸성귀가 귀한 이른 봄날에 요긴한 먹을거리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지금 나문재나물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몇 년 전부터 나문재가 알려기지 시작한 것은 안면도에 있는 한 펜션이 유명해지면서, 그리고 순천만이 관광지로 개발되어 그곳을 찾는 이들에 의해서가 아닐까. 기수지역이나 바닷가 갯벌에 주로 서식하는 염생식물인 나문재는 주목을 받지 못하는 식물이었다. 순천만 갈대밭이 알려지면서 그곳을 찾았던 이들이 멀리 갯벌에 검붉은 빛의 생명체가 가을의 진경을 그려놓은 것을 보면서 감탄하게 되고, 그 정체를 알게 되면서 SNS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날, 구절초에 내리는 햇살이 쓸쓸하지만, 가을을 전해주는 것처럼 갯벌에 자리 잡은 나문재는 나에게 가을이 깊다 한다. 비록 일부러 가을을 찾아 나선 것은 아니었지만 가을을 선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 있기를 얼마였을까? 종일 대지를 덥여주었던 태양이 황해를 넘는다. 붉게 물든 바닷물과 함께 갯벌에 자리한 나문재가 만들어주는 진경화는 나로 하여금 그곳에 있으라 한다. 가을을 가슴으로 품게 한다. 나문재가 만들어준 깊은 가을이 가슴에 머문다. 나문재가 있는 그 갯벌 머물게 한다.

일 년에 한 번 맞는 가을, 60번이 넘게 반복된 가을이련만 이 가을에 머물고 싶은 것은 단지 세월 탓일까. 그 자리에 머문 채 나문재에게 묻는다. 황해를 넘는 태양만큼이나 빠른 세월을 어찌 붙들겠는가? 하지만 작년에도, 그 작년에도 나문재는 이곳에서 가을을 그렸던 것이련만 나는 오늘에서야 조우하며 서 있다. 깨닫는 순간에서야 지난 긴 시간 동안 반복되었던 가을을 돌아보게 한다. 삶의 분요함과 그 여정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변명한 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황해를 넘는 태양이 쏜살같게 그 꼬리를 감추는 것을 어찌 붙들겠는가? 하지만 여기 석양에 반추된 가을은 가슴에 머문 채다. 이제 머지않아 나문재조차 성엣장에 뭉개지고, 백설에 덮여 가을날의 아름다움을 빼앗긴 채 긴 겨울잠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내 가슴에 담긴 나문재의 가을은 창조주의 기쁨을 여기서 감격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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