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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웠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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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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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호 목사

이제까지 15억 투자하여 봉쇄 수도원 모습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단 한 명에게 단 한 번도 돈 달라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헌금을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 였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길이 없었기에 하나님만 바라보았던 결과였습니다. 자금은 마련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봉쇄 수도원을 재촉하시고, 성도들의 협력이 없는 상황은 나를 하나님께로만 몰아갔습니다. 내게 던지는 돌을 주워 담을 쌓아 가야 했습니다. 몇 가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1. 시기가 안 좋았습니다.

은퇴를 앞두고 수도원을 세운다고 하니까 첫 인상은 “자기 은퇴 준비다” 였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들어 있는 사명을 사람들은 알아주지 못 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알아주고 위로하여 주었습니다. 기도하면 늘 들리는 위로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내가 있다.”

 

2. 천주교 이미지였습니다.

수도원하면 첫 인상은 천주교였습니다. 천주교로 가느냐는 비난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수도원은 안토니우스가 제일 먼저 세웠습니다. 그 후 폴, 마카리우스, 파코미우스가 세워나갔습니다. 모두 이집트 사막에 세운 기독교 수도원입니다. 로마가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정적들이 수도원으로 피해 은둔생활을 하며 수도원의 영을 받았습니다. 정치적 망명을 끝내고 로마로 돌아 왔습니다. 그 때 카시안이 로마로 돌아와서 “담화집” 이라는 수도원 영성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이것이 천주교로 수도원이 흘러 들어간 경로입니다. 수도원은 기독교에서 시작하여 천주교로 갔습니다. 그리고 천주교는 수도원을 발전시켜나갔습니다. 기독교 수도원 운동은 회복이요 본질입니다. 그리고 모든 종교에는 수도원이 있습니다.

수도원의 영이 그 종교의 핵심입니다.

 

3.모델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기독교 봉쇄 수도원이 없습니다. 첫 길은 누가 가 본 노하우가 없는 길이기에 경험을 빌릴 데가 없었습니다. 의논 상대가 없었습니다. 물어 볼 멘토, 답을 알려줄 경험자가 없었습니다. 소위 개척의 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들어가서 91개 수도원을 찾아다니며 물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에 300여 곳에 수도원이 있는 데 91개를 다녔습니다. 영어 하나로 씨름하였습니다. 48개 수도원은 말이 통하지 않아 공부를 포기하였습니다. 사진만 찍었습니다.

43개 수도원을 집중적으로 파보았습니다. 이스라엘수도원을 방문 하면서 수도원에 대하여 깊이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수도원을 직접 보게 하셨는지 섭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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