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목회 분류

신사참배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양향모 목사

광성교회 담임목사

개혁주의목회자훈련원 원장

양용근목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한국교회 역사에 있어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하여 신사참배를 했을 뿐만 아니라 총회나 노회에서 공식적으로 신사참배를 승인하고 참여하도록 독려한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은 신사참배가 우상숭배라고 거부했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신사참배가 우상숭배가 아닌 국민의례라고 하여 참여하고 말았다.

그러나 신사참배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라는 점과, 일제의 강요라고 했지만 모든 교회가 합심하여 반대했으면 반대가 가능했던 일을 자진해서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점, 그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중심의 개혁주의 신학이 무너지고 자유주의 신학사상이 팽배해졌다는 점 등은 한국교회의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며 교회가 변질되는 빌미를 제공했다고 본다.

 

신사(神社)란 일본 종교 가운데 하나인 신도(神道)의 사원 혹은 신도 의식을 집행하기 위한 장소를 지칭한다. 따라서 신사참배(參拜)란 신사에서 거행되는 신도의식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그곳에는 태양신으로 알려진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비롯한 일본 제국의 신들을 모셨는데 그 신사를 조선의 곳곳에 배치하여 종교적 참배 곧 신들에 대한 순복을 요구했다. 일본의 신도에서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와 더불어 신격화된 일황의 조상들 및 일황 그리고 일본의 애국자들 및 전쟁 전사자들이 신격화 되어 참배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신사참배가 애국적인 국가 행사 이상의 제국주의, 국가주의 및 종교적인 문제를 안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십계명에서 제 일계명과 제 이 계명에 대한 위반임이 분명하다.

신도에 대한 구체적인 기원은 분명치 않다. 단지 원시종교들이 흔히 하듯이 일본의 신도도 애니미즘(animism)이나 토테미즘(totemism), 샤머니즘(shamanism), 정령숭배, 자연숭배 등의 형태에서 기원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러한 원시적인 종교 형태가 사라지지 않고 점차적으로 일정한 의식을 구비하고 사상적인 측면을 주변 사상에서 빌려옴으로서 발전한 형태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종교연감』에서는 일본의 신도를 일본 민족의 고유한 신 혹은 신령에 대한 신념을 기반으로 발생한 종교 전체를 총칭하는 것으로 본다.

원시종교와 이후 종교 철학이 접목된 신도(神道)가 급성장 하게 된 것은 고잇신(御一新) 곧 메이지유신(明治維新)으로 알려진 일본의 개혁운동에 비롯된다. 메이지유신은 기본적으로 유럽의 선진적이고 발전적인 체계를 일본으로 이식하려고 노력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토(伊藤博文, 1841~1909)는 에도 막부시대 한계를 극복하는 것으로 유럽의 근대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바로 기독교라는 사실을 간파하게 된다. 이에 유럽의 기독교와 일본 역사서인 『일본서기』를 바탕으로 천황을 신격화하여 일황(日皇)은 현인신(現人神)으로 신봉된다. 신도가 인간이시며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그대로 일황에게 적용하여 그를 현인신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고, 그 의식이 신사에서 거행되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신사를 참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를 겸하여 섬기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로서 적그리스도에 대한 참배와 다름이 없다.

 

일본 제국주의는 일본과 조선을 하나의 국가라고 강조하는 내선일체(內鮮一體)의 구호를 걸고, 일본 천황에게 절대 충성하는 황국(皇國)의 백성이라는 황국신민(皇國臣民)을 주장함으로써 조선의 민족사상을 제거하려하였다. 이를 위해서 일본 신도를 조선에 뿌리 내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 조선의 종교를 일본 신도로 바꿀 수 있다면 조선의 지배를 영속적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었다. 일본 제국주의에게 중요한 것은 조선의 개종이었다. 그것은 유교이든 혹은 불교이든 아니면 기독교이든 상관없이 모두 하나의 종교, 하나의 국가, 하나의 황제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당면 문제였다.

이 신사에 대한 태도는 두 가지로 양분 된다. 하나는 우상숭배라는 분명한 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이 문제를 국가 행사라는 의미에서 종교적인 문제와 결부시키지 않으려는 현실적인 타협의 길이다. 결국 신사참배의 문제는 우상숭배인가 국가적 행사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행사가 이교적일 때에도 교회는 그 국가 권위에 순종해야 하는 가의 문제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저항권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칼빈은 『다니엘』을 인용하면서 하나님께서 세속적 주권을 실질적으로 통치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악한 국가 권위가 경건에 관하여, 참된 신앙의 진리를 밝히는 교리를 파멸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질서를 타락시키려고 할 때에는 복종하지 않아도 됨을 인식하고 있다.

일제는 이 신사참배를 조선인에게, 또 조선의 교회에까지 국민의례라고 하여 강요를 하였다. 진실한 기독교인들은 이는 국가행사가 아니라 종교행사이며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안 된다는 계명의 위반이라고 하여 저항을 하였으나, 많은 기독교인들은 국가의식이라고 하여 일제의 강요에 알면서도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신사참배는 성경적으로나 교회사적으로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거부해야 할 우상숭배이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