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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기에 너무 아쉬운 순교자 양용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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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향모 목사

서른여덟 젊은 나이, 사랑스러운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사남매, 일본대 법대와 평양신학교 졸업장, 이제 막 임직 받은 목사라는 직분과 그를 기다리는 교회의 성도들, 그토록 갈망해왔던 조국의 광복, 그 모든 것들을 기꺼이 내던져버리고 총총히 가야만 했던 양용근 목사님의 마음이 무엇이었을까? 가정은 물론 사회적 지위나 하고 싶었던 일들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며 목숨까지 기꺼이 버리셨던 그 분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필자는 양용근 목사님의 종손(從孫)이자 집안의 종손(宗孫)으로, 양 목사님이 순교하신 38세의 바로 그 나이에 신학을 시작하여 양 목사님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었다. 목사로서 성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연구하고 설교하면서 우리가 가진 바른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깨달았고 그 위대한 믿음을 진실하게 고백하는 것 또한 더없이 고귀한 일인가를 알게 되었다.

그 위대한 믿음을 알고, 진실하게 고백하고, 지키기 위해서 순교하신 양 목사님의 삶이 가슴 저리도록 소중한 것인데 세월은 흘러가고 역사 속에서 빛이 사라져가는 것이 안타까워 양 목사님의 생애와 목회와 순교 과정들을 연구하여 교회 앞에 내어놓게 되었다.

교회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한 순교자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신약교회가 시작될 때부터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심한 박해를 받았고, 스데반을 위시한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하면서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수하였다. 로마시대에도 교황의 박해에 대항하여 가이사(Caesar)가 주님이 아니고 예수님이 주님이라고 외친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다. 중세시대에 목숨을 걸고 ‘오직 믿음으로’를 외치던 개혁자들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에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성도들이 있었다.

이런 순교의 피로 점철된 역사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존재하고 있다. 현재 많은 신학적 자유주의자들이 교회를 점령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개혁주의를 외치는 바른 교회들이 존재하게 된 것도 순수한 정통신앙을 지키려는 성도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양용근 목사를 중심으로 순교자들의 신앙을 살펴봄으로 외형적인 교회를 존중하면서도 거룩한 싸움을 싸우도록 부름 받은 전투하는 교회, 참된 신앙을 위한 고투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살펴보는 일은 중요 과제라고 생각한다.

양용근 목사는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1905년에 태어났다. 일본이 패망하기 직전인 1943년에 이른바 ‘순천노회 교역자 수난사건’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고 광주형무소에서 수감 중 일제의 잔혹한 고문으로 인해 죽임을 당한 순교자다. 일제 강점기 수많은 성도들이 붙잡혀 재판을 받고 형무소에서 수감생활을 했으나 옥중에서 순교한 목사는 많지 않다. 주기철 목사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 이외의 순교자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정황이다. 양용근 목사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다. 순교자의 명단에 그의 이름은 포함되어 있으나 그의 삶에 대해서는 한국 교회사에서도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그에 대한 연구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오직 거룩하신 삼위 하나님만 섬기는 보수주의 신앙은 신사참배 사건을 기점으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부인하는 자유주의의 신앙으로 변질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신사참배 반대자들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거나 초야에서 신앙을 지켰다. 이러는 동안에 자유주의자들이 교권을 잡고 자유주의 신학 사상을 확장하는 기반이 된 신학교를 세움으로 많은 교회들이 전통적인 보수주의에서 자유주의로 변질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제와 타협하여 인간의 노력으로 외형적인 교회를 지키려고 할 때 적지 않은 신자들과 목회자들은 참된 교회의 보수주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투쟁하였다. 그리고 양용근 목사와 같은 이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가 죽음으로 순교하게 된다.

신앙의 순결을 지키며 하나님만 섬겨야 된다는 일념으로 헌신한 신자들과 순교자들을 찾아 역사 안에 그 정당한 위치를 확립시키는 것은 교회 역사의 사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취한 신사참배 강요와 그로인해서 한국교회가 당해야 했던 수모를 연구하고 그런 고통 속에서도 신앙을 지킨 사람들의 신앙을 재조명하여 밝히고 특별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양용근 목사의 신사참배 반대와 순교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일제 강점기의 신앙수호 정신을 살펴보고자 한다.

양향모(광성교회 담임목사, 개혁주의목회자훈련원 원장, 양용근목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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