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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재림 후에(요한계시록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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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성경은 사람이 동경하고 염원하는 황금시대가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 앞에 도래하고 있다고 예언하고 있다.

 

Ⅰ. 천국의 실존이 확인된다. 계21:1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라고 했다. 2절에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라고 했다. 기독교가 말하는 천국의 실존은 결코 인간이 조작한 주관적 산물이 아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내려왔다고 했다. 히브리기자는 이 천국은 하나님이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이라고 말하여 성부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왕국임을 강조했다(히11:10). 성자 예수님은 이곳을 내 아버지 집, 거할 곳이 많은 집이라고 했다. 자신이 친히 성도를 위하여 예비하러 가는 집이라고 했다. 그곳은 주님 자신이 상주하는 곳으로 다시 재림하여 우리로 그와 함께 영원히 거하게 할 곳이라고 했다(요14:1-3). 고후5:1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 했다. 성령께서는 이 천국의 실존을 우리에게 보증했다(고후5:5).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은 이 세상 장막에서 나그네로 거처하면서 그 성을 바라보며 살았다(히11:9-10). 그곳에는 지금 예수, 에녹, 엘리야 등이 죄와 상관없는 존재로 현존하고 있다.

 

Ⅱ. 창세기가 성취된다. 계21:1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했다. 창세기는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말했다(창1:1). 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했다(계21:1). 창세기에는 해와 달과 그리고 별들이 비쳤다고 했다. 그런데 계시록에는 그 성에는 주님 자신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기 때문에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의 비췸이 쓸데없다고 했다(계21:23). 창세기에는 잃어버린 낙원을(창3:24) 말한다. 그러나 계시록에는 회복된 낙원을 말한다(계22: 2). 창세기에는 마귀의 간교한 승리와 인간의 패배를 말했으나 계시록에는 마귀의 패배와 결박과 심판을 말하고, 또한 성도의 통쾌한 승리를 말했다. 창세기는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사실을 말했으나 계시록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얼굴 앞에 나아와 그와 함께 새 장막에 거한다고 했다(계21:3). 창세기에는 생명나무로 가는 길이 막혀버리고 쫓겨 나왔으나 계시록에는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복스러운 권리가 회복되었다고 말하고 있다(계22:14). 계21:1은 새 하늘 새 땅의 출현과 함께 처음 하늘과 처음 땅, 바다까지 없어져 버렸다고 했다. 이는 창세기의 성취를 말한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이 불완전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의 창조는 완전했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했다(창1:31). 다만 인간이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 땅이 황폐해지고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냈다(창3:18). 그러나 최후 심판 후에 새 하늘 새 땅이 출현되므로 하나님의 본래 창조의 목적과 기능이 회복되어 창세기가 성취된 것이다.

 

Ⅲ. 새 생활이 시작된다.

1. 처음 것들이 없어져 버린 생활: 계21:1에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했다. 새 하늘 새 땅은 이 세상의 보이는 가변적이고 유한한 것들이 없어져 버린 세계다. 그곳에는 인류의 숙적인 사망도 없다. 애통하는 것과 곡하는 것도 없다. 아픈 것도 물론 없다(계21:4). 지상교회에서 가졌던 부조리나 불합리, 아픔 등도 없다(계21:22). 해와 달의 비췸이 쓸데없다(계21:3). 밤도 없다(계21:25). 저주가 없는 세계다(계22:3).

2. 완전 무죄의 생활: 천국에는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 개들이 없다(계21:8, 22:15). 천국에는 이런 자들이 없다고 했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거짓말 하는 자들이 없는 세계다. 땅과 인류를 괴롭히던 원수들 곧 붉은 용, 두 짐승, 666의 무리들, 바벨론 음녀의 활동이 영원히 끝나버린 세계다(계16:19-21, 19:19-21, 20:7-10).

3. 완전통치의 생활: 계22:3에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라고 했다. 천국에서는 저주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창3:14-20의 저주상태에서 회복되었음을 나타낸다. 동시에 슥14:11의 성취다. 저주상태에서 회복되는 이유는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저주로 인해 하나님과 단절되었으나 이제 천국에서는 하나님과 그 어린양이 함께 계심으로 그 관계가 회복되고 더 이상 저주를 받지 않게 된다. 어린양의 보좌란 예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장소다. 거룩하고 영원한 통치 백성들에게 만족과 행복을 주는 완전한 통치다. 예수는 공평과 의와 사랑만으로 백성을 통치한다. 그러므로 그 왕국에는 군대나 경찰, 교도소, 선도단체 등이 필요 없다.

4. 완전예배의 생활: 계22:3에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라고 했다. 여기서 ‘섬긴다’는 말은 예배행위에 관련된 단어다. 예배는 인간만이 받은 축복이요 특권이다. 천국에 참여하는 모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그 어린양을 예배하며 경배하게 된다. 천국에서 성도는 밤낮 쉬지 않는 영원한 예배의 자유를 만끽한다. 지상에서는 예배의 본분을 다하다가 암혈과 토굴, 강과 바다, 사막 등에 유리되기도 한다. 인격모독을 당하고 온갖 직위가 박탈당하기도 한다. 가산을 탕진당하고 생명을 희생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어떤 외부적 압력도 없는 그야말로 완전한 예배의 새 생활을 누리게 된다.

5. 완전교제의 생활: 계22:4에 “그 얼굴을 볼터이요”라고 했다. 무죄세계의 아담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했다. 그러나 죄로 타락한 이후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만나 볼 수 없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심지어 모세에게도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출33:20 ,23).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성육하신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었으므로 그리스도를 대면한 것이 곧 하나님을 대면한 것이었다(요14:7,9, 17:3). 그러나 천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주님과 성도, 성도와 성도의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볼 수 있게 된다. 새 생명의 완전교제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신재철(초원교회 담임목사, 부산외대 겸임교수, 한국교회 송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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