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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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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지구가 끓는다. 초복인 지난달 17일 이전부터 반도가 끓고 있다. 아니 지구를 삶고 있는 듯, 태양은 얼마나 더 뜨겁게 지구를 달구어갈지 모르겠다. 이제는 지쳐가는 자신을 다잡아야 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견디고 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떻게 더위를 피할 수 있을까 하는 정도의 묘책을 찾아야 하지만, 결국 에어컨디셔너를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저녁, 아파트단지 안에 들어서면 평소에 듣지 못하던 소리가 들린다. 베란다에 매달려있는 에어컨디셔너 실외기가 일제히 돌고 있는 소리다. 더우니 창문을 모두 닫고 에어컨디셔너를 틀어대고 있는 것이다. 순간 드는 생각은 ‘만일 정전이 된다면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격한 반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해가 진 다음이라도 열기가 좀 식어야 할 것이나 실외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그러한 기대감을 완전히 포기하게 만든다. 쉼을 얻어야 할 것이나 단지에 들어서면서부터 이 밤을 어떻게 지낼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어야 하련만 한 달이 넘게 매일 밤 쉼을 얻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야 한다. 누웠지만 온 몸에서 흐르는 땀은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밤새 뒤척이다가 아침을 맞는다. 피로가 누적되면서 의욕도, 식욕도 점점 떨어지는 느낌이다.

인간이 기온을 측정하기 시작한 이래로 점점 지구의 열기가 더해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여름이 더워지는 것은 물론 상대적으로 겨울이 짧아지고, 봄과 가을은 있는 둥 마는 둥 지나가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금년이 대표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미 불볕더위를 매일 경험하고 있는 상황이니, 얼마나 더 더울지? 언제까지 이렇게 더울지?

이러한 더위를 옛 사람들은 혹서(酷暑) 혹염(酷炎) 염열(炎熱) 폭염(暴炎)라고 표현했다. 연일 이어지는 더위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순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불볕더위’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이 언어로 어떤 상태를 설명하려고 할 때 이런저런 수식어를 붙이게 되는데, 금년도의 더위는 어떤 단어가 적절할지? 게다가 더위가 길어지는 현실을 담을 수 있는 말이 궁하다. 어떻든 과거에 없었던 불볕더위는 지구가 더워지고 있는 현상이니 어쩌면 지구도 더위를 먹은 상황이다. 더위를 먹으면 통제가 어려워지는 것을 의미하고, 그 다음은 자연 처분에 맡기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워낙 땀이 많은 사람인지라 땀을 주체할 수 없으니 여름이 지나도록 몸도, 마음도 지친다. 하지만 내가 대처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나 수건을 비치하는 것이 전부다. 부채질조차도 몸을 더 덥게 만드는 것이니 차라리 활동량을 줄여서 땀을 다스리는 것이 방책이다. 따라서 내가 있어야 하는 곳이면 어김없이 수건을 어딘가에는 놓아둔다. 그것이 불볕더위를 이겨야 하는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선풍기 앞에서 잠시 몸을 식히고, 찬물로 샤워를 할 수 있으면, 내게 있어서 최상의 혜택이다.

그렇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은 도리가 없다. 옥상 텃밭에 심은 엇갈이 배추와 열무는 불볕에 모두 타버렸다. 봄내 상큼한 식감으로 입맛을 돋우었던 상추는 녹았다. 닭들은 더위를 이기기 위해서 흙을 파고 몸을 땅에 붙이고 헐떡거리고 있다. 사료 섭취는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물론 산란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옥상에 올라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녀석들을 살피노라면 인간이 할 수 있는 한계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생각한 것이면, 언젠가는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지만, 정작 더위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임시방편인 에어컨디셔너는 인간으로 하여금 점점 더 나약하게 만들고, 자기만 피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행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지.

초복 이전부터 시작된 불볕더위가 이제 말복을 앞두고 있으나 아직도 더위가 꺾길 것 같지 않는 기세다. 열대야가 계속되는 날도 기록을 매일 경신하고 있다고 하니 여름이 무섭다는 생각마저 든다. 밤에도 지구의 열기가 식지 않으니, 인간은 물론 생명들이 쉼을 얻지 못하고 지쳐가고 있다. 얼마나 더 견뎌야 하는 것인지? 얼마나 더 불볕더위가 지속될 것인지? 오죽 답답했으면 태풍이 오기를 기다릴까? 태풍이 주는 피가 크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태풍이 비켜가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금년에는 아예 대놓고 태풍이 오기를 기다리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의 진로가 한반도를 향하지 않고, 비켜갈 때 마다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는 인간의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그 답은 궁하나 이 더위를 이겨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이 또한 있어야 하는 더위라면 감당해야 하는 것이 도리인 것도 분명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뜨거운 지구를 만든 것도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무한 책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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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8.2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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