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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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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성숙

 

영혼은 어떻게 성숙하는가? 성숙과 성장은 다소의 차이가 있다. 성장은 키가 자람에 근거한다면 성숙은 열매로 가늠한다. 물론 성장이 있어야 성숙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지만 성장했다고 반드시 성숙한 것은 아니다. 마치 잎만 무성했던 무화과나무의 저주 사건처럼 성장했지만 열매가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열매 맺는 성숙을 향한 영혼의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

영혼의 성숙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영성이라는 의미만으로도 수많은 학설과 의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영혼이 성숙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인격적인 변화가 있다는 것이고 주님 닮고자 하는 몸부림이 있다는 것이다. 성숙의 종국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엡 4:13)

영혼의 성숙은 주님을 닮은 것이다. 성숙의 가늠자는 얼마나 주님을 닮았는가에 근거한다. 영혼이 성숙하면 순수함이 유지된다. 세속에 때 묻지 않고 계산적이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키우는 것이다. 순수함의 크기가 된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거나 중심사고에서 타인 중심으로의 전이나 사랑을 실천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는 감사의 삶이 드러나는 것들이 성숙의 표징이 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을 성숙시켜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을 성숙시키게 되면 교회 성장이라는 자연스러운 결과를 낳을 것이다.(엡 4:16)

교인들은 자신의 영성에 따라 교회를 찾는다. 교회의 드러나는 영성의 방향에 따라 사역뿐 아니라 선호도도 달라진다. 내가 분석한 영성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인들은 이중 어느 한 가지만의 영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어떤 성도는 감각적 영성을 요구하고 또 다른 부류는 인격적 영성을 추구한다. 목회자가 이 모든 영성을 충분 요건으로 채울 수는 없지만 흐름을 파악하고 욕구를 채워 줄 수는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영성을 통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통전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영성을 사역 화하는 역량도 가져야 한다. 지역적, 환경적, 사회적 변화가 영성의 욕구 변화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목회자는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영성을 결정하고 이끌어야 한다. 영혼을 성숙시켜 나가는 것이 교회 사역의 중요한 역할이다. 사람의 인격을 바꾸어 주님 닮게 하여 이 세상 속에서 빛이 되게 하고 소금이 되게 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이다. 교회는 영혼들을 성숙시켜 작은 예수를 길러내는 살아 있는 유기체여야 한다.

 

의사, 저술가로 활동하는 오리슨 스웨트 마든은 성공한 사람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

“그는 진흙으로 태어나 대리석으로 죽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재미있는 비유로 다양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진흙으로 태어나 진흙으로 남는다....

어떤 사람은 대리석으로 태어나 안타깝게도 진흙으로 죽는다.

진흙 태어나 대리석이 되길 꿈꾸지만 진흙으로 남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성품이 고귀한 사람들은 진흙으로 태어나 대리석으로 죽는다.”

 

그렇다. 어떤 상태로 죽어야 할 것인가? 대리석으로 삶을 마감하기 위하여 우리는 성숙해야한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가야 한다.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가야...”(엡 4:15) 한다. 그렇게 영혼이 성숙하도록 돕는 공동체가 바로 그 교회다.

김성진 목사

목회컨설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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