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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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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

노고지리

 

지난 오월의 첫 연휴가 있었던 어느 날 오후 시간이 있어 좀 걸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송도 신도시를 찾았다. 처음으로 송도 외각 가장 바깥에 있는 아직 개발하지 않고 매립지 상태로 있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그 길을 따라서 걸었다. 처음 가보는 곳이기에 주차할 곳이 어디에 있는 몰라 살피다가 적당한 공간이 있어서 차를 세우고 내렸다.

차에서 내리를 순간 들여오는 소리는 나를 그 자리에 멈춘 채 꼼짝도 못하게 했다. 사실 그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나는 녀석의 이야기를 반복했다. 걸으면서도 몇 번인가 녀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만큼 반가웠기 때문이다. 아니, 신기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날 나를 흥분시킬 만큼 기쁨을 주었던 것은 다름 아닌 종달새의 지저귐이었다. 봄날이 오면 종달새 지저귀는 소리가 당연했고, 봄날 아침 창공에 높이 솟아오른 종달새의 노래 소리는 대지의 생명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동토가 풀리고 대지에 생명력이 느껴지기 시작하는 날이면 뻐꾸기와 함께 봄을 전하는 전령이 있었다. 특별히 녀석이 좋아하는 곳은 보리밭이다. 마을 주변에 조성된 보리밭은 녀석이 깃들기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녀석의 습성이 관목이나 교목이 형성된 숲보다는 초지가 형성되고 탁 트인 평지를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그런 곳을 대신할 수 있는 곳은 보리밭이다. 해서 녀석은 평지에 초지가 형성된 넓은 공간 어딘가에 둥지를 짓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둥지를 지키면서 종일 노래한다. 정지 비행을 할 수 있는 새들이 극히 드문데, 종달새가 그 중에 하나다. 녀석이 정지한 채 지저귀는 소리는 봄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하는 봄의 소리다. 녀석이 포란하는 동안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소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부터 녀석의 노래를 들을 수 없었다. 더더욱 인천에서는 들어본 기억조차 없는 것 같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봄날에 뻐꾸기 소리는 들었지만 녀석마저도 이제 오지 않는다. 한데, 종달새가 여기에 돌아온 것이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인천에서 살았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녀석을 그날 송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인천에서 들어보지 못했던 녀석의 소리가 들리니 녹음된 소리를 틀어놓았나 하는 의심을 했다. 차에서 내려 움직이지 못한 채 녀석의 소리가 나는 곳으로 귀를 기울였다. 분명 그 소리는 창공에서 들렸다. 눈은 레이더처럼 소리를 따라서 살폈다. 멀리 제자리 날기를 하면서 노래하고 있는 녀석이 포착되었다. 순간 감격스러웠다. 한참이나 녀석과의 조우하는 시간을 가졌다.

종달새는 우리나라 텃새다. 텃새들 중에도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서식환경에 민감하기로 하면 1등인 녀석이기에 환경의 변화와 함께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모든 생명체들이 서식환경이 민감하지만, 참새처럼 적응력이 강한 놈이 있는 반면 종달새처럼 환경에 매우 민감해서 자신의 환경에 맞는 곳으로 이주하는 녀석이 있다. 그 중에서도 아마 으뜸인 것이 종달새일 것이다. 따라서 녀석을 ‘환경 지표종’이라고 분류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녀석은 공기가 맑고, 넓은 초지와 시야가 트인 공간이 확보되는 곳을 좋아한다. 우선은 맑은 공기가 필요하다. 아마 녀석의 활동 특성상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녀석은 둥지 근처에서 높이 날아올라 제자리 비행을 하면서 종일 노래한다. 제자리 비행을 하면서 노래하는 새는 종달새밖에 없을 것이다. 황조롱이는 노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황조롱이는 먹이를 사냥하기 위한 제자리 비행을 할 뿐이다. 반면에 종달새는 노래를 하기 위한 제자리 비행을 한다. 또한 그렇게 노래하는 것은 자신의 둥지를 감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녀석만의 생존방식이다.

어쩌면 인천은 녀석이 서식할 수 있는 넓은 초지가 없기 때문에 볼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 한데 송도를 매립하면 만들어진 공터에 자연스럽게 자란 풀들이 있어서 넓은 초지가 형성이 되었고, 바람이 주로 바다에서 내륙으로 부니 시내보다는 공기도 맑은 편이다. 해서 녀석이 그곳을 발견하고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분명 텃새건만 이제는 볼 수 없는 종달새를 만난 그 날은 잊을 수 없다. 감격과 동시에 우리가 사는 환경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생명조차 살 수 없어 떠날 수밖에 없는 곳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야 했다.

조금만 환경을 생각하면 본래 하나님이 지어주신 “좋았던” 환경에서 행복할 수 있을 것인데, 망가트린 곳에서 자족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닌지? 이 땅에 살도록 허락을 받은 녀석들이지만 결코 살 수 없어서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인간들이 일부러 만들어준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필요해서 매립을 해놓고 방치한 상태의 매립지에 초지가 형성되었고, 그곳에 녀석들이 찾아든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다고 하면 이 지경이 되게 한 책임이 인간에게 있음을 고백하고, 녀석들도 같이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책임도 져야 하는 것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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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8.07.04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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