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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같은 제사장(벧전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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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같은 제사장(벧전 2;9)

-제사장은 백성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며 중재 기도하는 자이다.

베드로전후서는 사도 베드로의 서신으로서 지금의 터키지방인 소아시아 서쪽과 북쪽에 있는 로마의 다섯 지방에 흩어져 있는 핍박 받는 형제들에게 보낸 서신이다. 베드로전서는 믿음 때문에 핍박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주는 내용이다. 특히 그리스도를 위하여 충성스러운 증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굳게 설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때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왕 같은 제사장들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Ⅰ. 멜기세덱은 제사장이었다. 히7:1에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했다. 성경에서 멜기세덱이란 인물은 창세기와(창14:18-20) 시편(시110:4). 그리고 히브리서에서 여러 번 언급되고 있다(히5:6,10,11,6:20,7:1,6,10,11,15,17).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사람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멜기세덱은 이런 제사장이었다. 누가 그를 제사장으로 세웠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자신이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막 정착했을 때 등장한다(창14장). 아직 아브라함의 독자 이삭도 태어나기 전이다. 앞으로 약 400년의 세월이 지나야 레위지파 중 아론을 선두로 하여 제사장이 나타날 것이다. 구약율법에 따르면 레위지파가 아니면 누구라도 제사장이 될 수 없었다. 오직 두 사람만 예외가 있다. 멜기세덱과 그리스도이다. 모든 제사장은 반드시 레위지파의 자손이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지파의 자손이다. 유다지파의 자손이면서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 되었다. 이는 법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성경적으로는 가능하다(히7:16). 누구나 레위지파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이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제사장이 되셨기 때문이다(시110:4,히5:6,6:20,7:11,17).

Ⅱ.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가 된다. 출19:5,6에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고 했다. 제사장이란 “다리를 놓은 사람”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다리를 놓은 중재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포함한 율법을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하는 다리, 율법의 전달자가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제사장을 다시 구별하여 세웠는데,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다. 하나님은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약속하셨다(민6:27). 이렇듯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다리와 은혜의 통로이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인 유대인들, 그리고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소유한 백성이라는 것은 자랑만 할뿐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전달자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율법과 복음은 똑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그 말씀을 소유하고만 있으면 율법이요 이방인에게 이르기까지 전달하면 복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자요 축복의 통로가 될 새로운 제사장을 선택하셨다. 그들은 그리스인들이요, 바로 오늘 우리들이다(벧전2:9). 이 말씀에 근거하여 종교개혁자 마틴루터 (Marin Luther)는 만인제사장설(萬人祭司長說)을 주장하였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다 제사장의 자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Ⅲ. 성도는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받았다. 롬15:16절에“....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의 제사장이 되었음을 변함없이 고백하고 있다. 구약성경에 제사장이란 말 ‘코헨, כהן’ 이 700번 정도 나온다. 이 말은 제물과 제단 그리고 축복과 관계되는 말이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자, 하나님께 드려지는 자를 의미했다.

바울은 이런 것을 염두에 두고 자신을 제사장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는 자신이 율법시대의 모형적 제사장이라는 말은 아니다. 하나님은 범죄 타락한 아담에게 중보사역의 필요성을 알려주었다(창3:15,21). 죄로 막혀버린 담을 헐고 화목케 하는 중보자이다. 창세기의 가인과 아벨이 제사장 노릇을 했다. 제사장 제도는 모세시대에 와서 입법화 되었다. 그러나 구약의 모든 제사장들의 중보사역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예표 한 것이다. 신약에서는 전도자를 제사장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바울은 자신을 제사장이라고 했다. 이는 자신의 사역이 내용에 있어서 제사장적 성격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대표자이다. 그는 인간 중에서 선출된 자이다(히5:1). 이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임명한 자이다(히5:4). 그는 하나님께 거룩하게 바쳐지도록 성별된 자이다(레21:4-6). 이 제사장은 인간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며 기도하는 자이다(히7:1). 이 제사장의 주 임무는 백성의 죄를 위하여 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일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릴 때 제사장을 통하여 드리도록 명령했다(레1:1-9). 또 하나의 주된 임무는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일이다(히7:24,25). 바울은 하나님께 부름 받고 이런 제사장적 사역들을 감당함을 깨닫고 확신 있게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이런 바울이 자신은 매일 죽노라고 했다(고전15:31). 뿐만 아니라 이방인도 전도하여서 그리스도께 드리고 싶다고 했다.

Ⅳ.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이다. 벧전2:9에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는 축복을 입었다(출19:6). 그러나 이들은 이런 영적인 축복을 감당하지 못했다. 장자로서의 사명을 버린 것이다. 저들에게 입혀졌던 하나님의 제사장 축복은 이제 이방인들에게 넘겨졌다. 베드로 사도는 신약의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바울이 제사장적 사역을 감당한 것처럼 신약의 모든 성도들은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 중세 로마천주교는 성도들이 왕 같은 제사장직을 감당하는 것을 가로막았다. 고해성사라는 미명하에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에 사제가 앉아 사죄권을 남용했다. 종교개혁을 시작한 루터는 오직성경, 오직믿음, 오직은혜 외에 만인제사장직도 강조했다. 성도라면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 예배드리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예수 외에는 어느 것도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백성에게 선포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과거, 현재, 미래의 계시역사를 백성에게 알려주어 경고와 위로와 축복을 주는 자이다. 제사장은 백성의 대표자로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며 중재 기도하는 자이다. 왕은 하나님의 모든 권세를 받아 세상을 통치하는 자이다. 이 통치는 교회와 세상에 미친다. 예수님은 대 선지자요, 대 제사장이요, 만왕의 왕이다. 그는 이런 삼대 직무를 자신의 종들에게 허락하셨다.

신재철(초원교회 담임목사, 부산외대 겸임교수, 한국교회 송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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