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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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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2:14-26)

-하나님은 이들의 행위가 아니라 행위로 고백되는 믿음을 보시고 이들을 의롭다고 하시었다

 

믿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지 않게 연결하는 끈이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는 힘이다. 이런 믿음은 우리로 회개 중에서 열매를 맺게 하며 죄로부터 성결에로 마음을 다하여 나아가게 한다.

1. 믿음과 행함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약2:14-19). 성경 한 곳에서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말하고 다른 곳에서는 행함이 있는 믿음에 의하여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서로 충돌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성령 하나님만이 성경의 저자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믿음이 있노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에게 믿는 사람에게 있어야할 행함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그 믿음은 아무 이익이 없다. 그러므로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면 구원은 전적으로 인간의 행위를 조건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성경은 그렇게 두 가지가 서로 다르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믿음과 행함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헛것에 불과하다. 이런 믿음은 단순히 진리를 듣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믿음은 믿음 같지만 믿음이 아니다. 이런 믿음은 귀신들도 갖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귀신들이 갖는 믿음도 참 믿음인 것으로 보인다. 귀신들은 한 하나님을 알고 믿고 있다. 저들은 복음의 모든 핵심적인 진리를 다 알고 있다. 그러므로 저들은 믿고 떤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귀신들에게는 결코 그 믿음에 따른 바른 행위가 한 가지도 따르지 않는다. 구원 얻는 참 믿음에는 그가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는 행위가 반드시 따르게 되어 있다.

2. 행함이 있는 믿음은 무엇인가?(약2:21-26) 성경은 두 가지를 예로 들어 말한다.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믿음으로만 아니라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행함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분명히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이끌고 밤하늘의 별들을 보여 주시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앞으로 그가 보내실 성자 하나님을 통하여 아브라함처럼 구원 얻을 신령한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원대한 구속의 역사가 온 세계에 이루어질 것을 보았다. 아브라함은 오실 메시아 즉 그리스도를 믿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하셨다(창15:6).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또 한 번 의롭다함을 얻었다. 그가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하셨다(약2:21).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다. 물론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을 드리는 일은 참으로 크고 놀라운 행함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온 일은 그보다 못지않은 크고 놀라운 행함이었다. 그러나 이를 의롭다고 하지 않으시고 이삭을 드리는 일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셨다. 이삭을 제단에 드리는 일은 어떤 행위보다 크고 위대한 행위이기 때문에 이를 보시고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신 것은 아니었다. 아브라함의 지극한 순종을 보시고 하나님이 그를 의롭다고 하신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하여 앞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세계적인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지리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하나님의 명령대로 제단에 드리려고 할 때 그의 믿음은 약하여지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세계적인 구속의 역사를 여전히 그대로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삭이 죽는데 어떻게 그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그 마음에 일었다. 그러나 이삭이 죽으면 하나님이 틀림없이 그를 살리시어 그의 약속을 이루시리라고 믿었다(롬4:17). 단순한 순종이 아니라 믿음에 근거한 순종이요, 그의 믿음에 대한 확실한 고백과 같은 순종이었다. 아브라함의 행함은 바로 믿음 그 자체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함을 의롭다고 하시었다. 하나님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보시고 의롭다 하심이 아니었다. 혹은 어떤 선행이나 공로로 보시고 의롭다 하심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행함으로 그대로 고백되는 것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시었다.

기생 라합. 기생 라합은 여리고를 정탐 온 두 사람의 이스라엘 사자들을 숨겨 주었다. 그리고 다른 길로 가게 하여 그들로 살아서 돌아가게 하였다. 하나님은 기생 라합의 행함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미 이 때 기생 라합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라합은 믿음의 힘으로 약속을 붙들었다. 그녀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를 붙들고 경건치 않지만 그를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그녀가 믿는 믿음의 구체적인 행위가 사자들을 숨겨주고 살려준 일이었다. 사자들을 숨겨주고 살려 준 일을 하나님은 너무나 고맙게 여기시고 라합을 의롭다 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행위를 하나님은 공로나 선행으로 보신 것이 아니라 바로 믿음의 고백으로 보셨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라합의 행위가 아니라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행위나 라합의 행위가 그들로 의롭다 함을 얻는 조건이 아니었다. 그들의 행위는 곧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유일의 구주 되시는 것을 믿습니다'는 고백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들의 행위가 아니라 행위로 고백되는 믿음을 보시고 이들을 의롭다고 하시었다. 믿음이 이들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한 것이다. 믿음만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믿음도 사실은 우리가 판단하여 가진 것이 아니다. 그 믿음은 곧 하나님의 선물이다(엡2:8). 우리가 거듭남을 받았을 때, 성령님은 지금까지 우리가 믿을 수 없었던 것들을 믿게 하셨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우리가 믿을 수도 있고, 안 믿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본래 우리의 본성은 죄로 죽어 비참한 상태에 있었다. 그리하여 성경이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반항하고 싫어하고 마음에 두기도 거절하였다(롬1:28). 성령님은 이런 상태에 있는 우리의 지식이나 감정이나 의지를 전적으로 굴복시켜 우리로 믿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놓으셨다. 그리하여 믿기 때문에 행위가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영원히 의롭다 함을 얻고 확신으로 인하여 그것이 몸 밖으로 표현되고 순종되는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 말씀에 대한 순종에서 나오는 선한 행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믿음을 행위로 고백해야 한다.

신재철(초원교회 담임목사, 부산외대 겸임교수, 한국교회 송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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