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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책임은 누구 몫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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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옥 목사 (간석제일교회 원로)

전도의 책임은 누구 몫인가

 

교회성장에 올인 하던 원로목사 후임으로 젊은 목회자를 모신 교회의 뜻있는 장로와 교인들이 현실적으로 마음 아픈 것이 교세의 위축과 재정의 압박이라고 한다. 물론 대부분 교인들은 이런 상태에 대해 마음으로만 알고 내색은 자제하고 있다. 후임목사에게 시간을 드려보자는 뜻도 있을 것이다. 또 흔히 하기 좋은 말로 이 시대는 성장이 멈추고, 따라서 교회는 이제 성숙을 지향하고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절대 불리한 상태에서도 전도를 통해 성장이 가속되었고, 오늘날도 부흥하는 교회가 많고 또 불행한 일이지만 이단들은 계속 몸짓을 불리고 있다. 오로지 일평생을 교회성장에 올인 하다 은퇴하고 그래도 땀과 눈물 뿌렸던 교회를 위해 기도밖에 할 수 없는 원로들의 입장에서 성장이 멈춰버린 교회를 눈여겨 바라볼 때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것을 지나친 노파심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전도의 씨는 누가 뿌리며 심는가.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갔을 때 가장 심각한 것이 물이었다. 물갈이로 모두가 복통을 호소하는데 가장 좋은 것은 사과주스를 만들어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사나이가 개척시대 내내 전국을 누비며 사과 씨를 심었다. 그의 바램은 단 하나 “후손들이 아메리카에 정착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이것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죽은 후 그를 「조니 애플시드」라 불렀다. 오늘날도 모든 크리스천은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의 안위를 찾기보다 후손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조니 애플시드」처럼 전도의 사명을 명심하고, 다시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심어야 한다. 주님은 이 일을 위해 오셨다고 천명하시고 이른 아침(막1:35~39, 요8:2)에도 정오(요4:6)심지어는 십자가상의 최악 상태에서도 전도(눅 23:42~43) 하셨다.

그러면 전도의 십자가는 도대체 누구의 몫인가. 중국 제나라 위왕(衛王)이 시찰 가다가 명산을 발견했다. 넋을 잃고 명산을 바라보다가 올라가자니 힘이 들고 가마니 말도 탈수가 없다. 왕은 “누가 나를 저 산으로 편하게 옮겨 놓을 방법이 없는가 알려주는 자에게는 원하는 소원을 다 들어주겠노라” 허나 모든 신하가 묵묵부답 왕은 당시 손자병법의 손자와 버금가는 손빈을 향해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저에게 전하를 산위로 올릴 방법은 없으나 일단 산위에 올라가시면 밑으로 내릴 방법은 있습니다.” 왕은 애를 쓰며 산위에 올랐다. 감탄하며 기뻐하였다. 그때 손빈은 “실은 제가 밑에서 드린 방법이 곧 폐하를 산 위로 올리고자한 방법 이였습니다. 스스로 오르게 하는 것 말고는 이 산에 오를 방법은 없사옵니다.” 그렇다. 스스로 오르는 것 외에 왕도는 없는 것이다. 결국 사람을 하늘나라 그 좋은 세계로 인도하는 길은 내가 전도라는 것 외에는 없다. 그러므로 목사는 손빈의 말처럼 교인들이 스스로 전도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여 가르치고 결단시켜야 한다. 미국 애리조나주 선 밸리(sun valley)는 억만장자들이 은퇴 후에 사는 곳이다. 지상천국이요, 유토피아다. 스트레스, 걱정, 도전이 없는 이상의 나라인데 특이한 것은 이곳 노인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불행한(?) 노인들보다 치매발병률이 훨씬 높았다. 너무 편안하니까 안일하고 무력증에 빠져 면역력을 상실하여 무너지면서 떠났던 고향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교인들이 지금은 전도 이후의 시대이니 그만 두자하고 손 놓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개교회는 또 다른 노인당으로 전락되고 교세는 계속 쇠락하고 말 것이다. 전도를 너무 거북하게 이론적으로만 꾸리지 말고 전도- 도전해보자!

전도는 도전하면 길이 열린다. 세상에서 지나쳐도 죄가 되지 않는 것이 둘 있다.

첫째는 겸손이고 둘째는 전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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