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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앞에 두손을 들자 - J.C.Pen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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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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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옥 목사

 

 

 

하나님앞에 두손을 들자 - J.C.Penney

 

목사의 아들로 세계적인 인물이 된 사람이 많습니다.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는 가난한 시골 목사의 아들이다. 그들은 결혼도 포기한 채 최초로 비행기를 만들었다. 백화점 왕 J.C 페니(1875~1971)도 목사의 아들이다. 지금 독일 여수상 메르켈도 목사의 딸이다. 페니는 대학을 졸업한 후 친구와 함께 백화점에 취직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들 중 다른 친구는 실망한 나머지 그만 두고 말았다. 하지만 페니는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엘리베이터를 안내하면서 고객들의 구매 심리를 파악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거야!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서 책임자가 되었고, 나중에는 이 백화점의 최고 경영자가 되었다. 그는 정직을 경영철학으로 삼았다. 가게 입구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렇게 써 붙였다. 사람들은 그가 망할 것이라 비웃었지만 사업은 크게 번창하였다. 페니는 정직을 바탕으로 1,660개의 점포를 남겼다. 그는 「에너지 다발」이었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과 같이 사업력과 도덕성을 지닌 사람을 채용하였는데, 직원을 채용할 때 반드시 그의 부인도 함께 면접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도 인생의 고난과 질곡은 예외가 아니었다. 한참 승승장구하던 때 1910년 부인이 사망하면서 그는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절망했다. 1919년 그는 재혼했고, 사업은 계속 번창했다. 그러나 둘째 부인마저 4년 만에 사망했다. 페니는 사업세계로 도피했다. 그리고 세 번째 결혼하였다. 1929년 그의 부는 4천만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대 공항이 불어 닥쳤고, 페니는 돈과 완벽했던 명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는 자살유혹에 시달리며 대상포진의 고통에 시달리고 수면제에 의지하다가 미시간 주 베틀크릭에 있는 격리병원에 수용되었다. 그는 입원 첫날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아 눈물로 아내와 아들들에게 편지를 써놓고 누웠습니다. 그런데 근처 예배당에서 익숙한 찬송가가 들렸습니다. 그는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예배실로 가 뒷자리에 앉았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가 불려지고 있었다. 심령이 뜨거워질 때 “사랑하는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를 좀 돌봐주십시오” 그 후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무한한 어두운 공간에서 찬란한 태양 빛으로 옮겨지는 느낌이었고, 마음 속 무거운 짐이 옮겨져서 그 방을 걸어 나올 때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나는 마비된 심령으로 풀이 죽어 들어갔으나 해방되어 기쁜 마음으로 나왔다”고 하였다. 그는 계속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데 마음이 평안하고 즐겁고 병도 낫고 건강도 회복되고 사업도 왕성하게 회복되었다. 그는 이제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신앙인이 되었다. 그는 그 죽음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돕겠다고 결심했다. 제일 먼저 그는 은퇴하고 갈 곳 없는 목사들을 위해 따뜻한 플로리다에 콘도 100채를 지었다. 거기에서 위로 받고 사는 목사들이 페니를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하였다. 1930년대 말 페니는 다시 부를 구축하였고, 전국에 J.C 페니 백화점을 1,660개나 개설하면서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였고, 자신의 신앙을 열심히 전달하였다. 40세에 백만장자가 되고 경제 공황과 더불어 절대 절망의 늪에 빠져 사경을 해맬 때가 50세 중반이었는데 그 후 그는 넘치는 건강으로 96세까지 장수하며 신앙인으로 승리로운 삶을 살았다. 신앙인도 정직해도 환란과 고난은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신앙인은 혼자가 아니다. 회개와 기도로 하나님께 나가면 누구든 살 수 있다. 절망에 엎드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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