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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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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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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전 교수

 

개근상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주는 상들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웠던 것은 개근상이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각각 3년을 개근한 학생들에게 주는 상이다. 총 12년을 개근한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은 적어도 그 기간 동안 출석할 수 있는 환경과 건강이 따라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지 환경이 좋아서 결석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말하기 어렵다. 그가 학교에 가겠다는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6년을 개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공부를 잘 해서 타는 우등상과는 다른 의미에 귀한 상이 개근상이다. 그것은 단순히 그 학생의 환경에 의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학교생활에 대해서 성실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결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웬만큼 아파도 학교에 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분위기도 개근상을 중요하게 여기게 하는 요인이었다. 그것을 학생의 기본 도리라고 생각했고, 일에 임하는 성실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었기에 가장 중요한 상으로 여겼다. 그래서인지, 해병대의 모병과정에서는 성적이 아니라 고등학교 재학중의 출석률을 중요하게 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만큼 6년 혹은 12년의 개근은 쉽지 않은 것인데, 그 기간 동안 개근을 했다는 것은 당연한 것임에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6년 혹은 3년 동안 개근한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학교 때의 일이다. 소아마비를 앓고 있는 급우가 있었다. 당시는 교통수단이 녹록하지 않았던 시대인지라 그가 학교에 다니는 것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비록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해서 등하굣길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도 역시 두 발로 걸어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누군가가 그의 책가방을 들어주고, 그는 목발을 집고 먼 길을 걸어서 학교를 다녔다. 그가 졸업식에서 개근상을 받았고, 그의 가방을 들어주었던 동네 친구는 모범상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아무튼 두 사람이 나란히 상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초중고등학교에서 개근상이 없어진다고 하는 뉴스로 전해졌다. 그 소식을 들으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중학교 동창인 소아마비 장애를 갖고 있던 그였다. 그가 개근상을 받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했고, 어떤 상보다 축하를 했던 그 순간이 생각났다. 개근상이라는 단어는 그 사람의 성실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단지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개근상에 담긴 의미가 컸고 중요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 가치관의 변화가 많이 있었다. 성실함 보다는 능력과 재능이 더 중요해졌고, 공부를 반드시 학교에서 해야 한다는 개념도 없어졌다. 오히려 학교를 빠지거나 휴학을 해서 다른 경험과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학교를 결석하는 것은 고민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고, 그것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도 굳이 말리지 않고 오히려 장려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그러니 결석하지 않고 학교에만 출석하는 것이 굳이 칭찬이나 격려해야 할 일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게다. 어떤 의미에서는 다른 기회를 갖지 못하거나 가질 수 없는 학생이라고 밖에는 달리 이해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 아닐지.

그러니 학교에서 더 이상 개근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지 않게 된 것이고, 학부모나 학생도 다르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6년 개근상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이 겨우 두 자리 수를 넘기는 정도라고 하니 이젠 학교에 다닌다는 것의 의미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학교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도 지워진 것 같다. 굳이 학교에 매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학교 스스로가 선택한 것 같다. 국민교육이란 국가적 차원에서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일반국민들이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와 공동체 의식을 형성시켜주는 것에 방점이 있다. 또한 국가라고 하는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국민으로서 기본적인 의무와 책임을 갖게 하는 것도 국민교육의 목표다.

이제 그러한 기본적인 의무와 성실하게 사는 것의 가치를 공유하게 하는 것보다 개인의 취향과 능력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물론 그동안 개인의 인격과 목표를 중시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로 반성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보편적인 가치를 포기하는 것은 과연 잘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개근상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것이 교육당국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시대적 변화와 필요에 의해서 교육방법이나 제도를 바꾸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성실한 사람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성실이라는 가치가 부정된다면 재주를 부릴 수 있는 사람만이 능력자로 인정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이마저 기성세대의 걱정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성실함을 부정하고 재주만 있으면 된다는 의식은 책임을 부정하는 결과에 이르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다르지 않다. 비록 좀 부족하더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실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아름답고 귀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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