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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죽고 함께 살자(고린도후서 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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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죽고 함께 살자(고린도후서 7:2~4)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만을 신앙의 본질로 삼고 있다.

 

고린도는 상업과 무역으로 이름난 도시이다. 또한 온갖 도덕적 오염과 타락으로 가득 찬 도시이다. 이 고린도를 내려다보는 곳에 아크로폴리스(Acropolis) 언덕이 우뚝 솟아 있다. 이 언덕은 요새일 뿐만 아니라 아프로디테 여신의 신전이기도 하다. 이 신전의 전성기에는 1000여명의 여승이 있었고 이들은 종교적 창녀로서 저녁이 되면 저들이 직업을 위해 고린도 거리로 내려왔다. 그래서 당시 “아무나 함부로 고린도를 여행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였다.

바울은 이 고린도 시의 죄악상을 강력히 나열하고 경고했다(고전6:9~10). 이런 죄악의 고린도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붙잡고 고린도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자 고린도 시의 타락의 영향과 미약한 신앙으로 여러 가지 교회 안에 문제가 발생했다. 교회 안에 분파주의가 팽배했다.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예수파 등으로 나뉘어 분열과 비난 등 정죄를 일삼았다(고전1:12). 고린도 시의 성적문란과 방종생활이 교회 안에 파급되어 근친상간의 음행이 일어났다(고전5:1-13). 고린도교회는 이 일에 무관심과 침묵으로 대처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사역에 대해 감사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사역을 훼방했다. 저들은 바울이 불의를 행하고 교인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했다. 또 교인들의 재산을 속여 빼앗는 자로 여겼다. 또한 거짓 교사들에 의해 바울을 변덕쟁이요 독재자로 판단했다.

이런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바울은 ‘사랑하는 자들’(고후7;1)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는 약속을 가진 자라고 했다(고후6:18).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온갖 육과 영의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 했다(고후7:1). 그러면서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고 강청하고 있다. 원치 않는 일로 인한 오해를 풀기 위해 바울은 최선을 다했다. 애정을 가지고 접근을 시도하면서 함께 죽고 함께 살자고 호소했다.

왜 함께 살고 함께 죽어야 하는가? 신앙의 본질이 같기 때문이다. 고후 7장 3절에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고 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타락에 심한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바울은 주의 사랑으로 이 상처로 인한 실망을 녹였다. 그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애정을 구했다. 자신이 얼마나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했던가를 알아달라는 절규인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수고를 망각하고 그 사역을 훼방했다. 이런 교인들에게 바울은 마음을 열기를 원했다. 정죄의 화살대신 애정의 음성을 가지고 다가섰다. 이유는 생사를 같이하려는 심정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바울과 고린도교회 신자들은 함께 죽고 함께 살 수 있는 사랑의 관계이다.

고후6:14 이하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 했다. 의와 불법이 빛과 어두움이 함께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될 수 없으며 신자와 불신자가 상관할 수 없다고 했다.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은 일치될 수가 없다고 했다. 비록 고린도 교인들이 연약하여 죄에 빠진 생활을 했지만 저들의 가슴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좌정했다. 저들은 신앙이 약하여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용납했다(갈1:6-9). 신앙이 어린 아기와 같았기 때문이다. 신앙이 장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앙의 본질은 바울과 같았을지라도 신앙이 어려 불법을 용납하고 말았다. 분별력이 없어서 넘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을 향해 “함께 죽고 함께 살자”는 호소를 했다. 신앙의 본질이 같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슴을 지배하는 예수나 고린도교회 신자들을 붙잡고 있는 예수가 같기 때문이다. 예수의 성육신이, 사심이, 십자가 죽음이, 부활이, 승천과 재림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신앙의 본질이 일치하지 못하면 함께 일할 수가 없다. 교회에 출입하는 모든 성도들이 믿음의 강도에 있어서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우리들의 경제 상태나 세상적인 배경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 안에 있는 성도는 신앙의 본질이 같다. 우리의 신앙내용과 그 신앙의 대상이 예수 한분이다.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만을 신앙의 본질로 삼고 있다.

이 같은 본질을 토대로 복음전파라는 사명까지 공유하고 있다. 나아가 하나님 영광이란 삶의 목적도 동일하다. 따라서 신앙의 본질과 사명 그리고 목적이 같은 고린도교회 성도들과 함께 살고 함께 죽자고 호소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이 예수를 위하여 함께 죽고 함께 살아야 한다. 우리의 모든 죄는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다. 우리는 다시 부활하신 주의 공로에 힘입어 살게 되었다. 주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통하여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신재철(초원교회 담임목사, 부산외대 겸임교수, 한국교회 송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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