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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수배자가 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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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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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41

 

지명수배자가 되시다

 

요11:45-57

 

나사로를 살리신 이야기는 요한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표적 중 일곱 번째 표적(sign-act)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표적을 학자들은 다른 6개의 표적은 물론 예수님의 공생애 전체의 클라이맥스(climax)라고 한다. 주경학자 모리스는 “경이로운 기적”이라며 “공개적으로 그것도 예루살렘에서 불과 5리 밖에 안 되는 감람산 근처 베다니에서 일으키신 기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했다. 예수님은 전에 나인성 과부의 아들(눅7:11-17)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막5:35-43)도 살리신 적이 있는데 마치 각 연령층을 대표해서 한 사람씩 살리신 것 같다. 야이로의 딸은 어린 소녀였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은 청년이었으며 나사로는 장년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리스가 강조했듯이 다른 경우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적들이었지만(그것도 대단한 기적) 이 표적은 죽은 지 이미 나흘이 되어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유대인의 상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이 표적을 목격했는데 이번에도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그들 중 일부가 믿었던 것 같은데 요한은 그들의 수가 상당한 수, 즉 많은 수라고 명백히 밝혔다(45절). 이적이 신앙의 결실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서 “그를 믿었다”라는 말은 초보단계의 순수한 신뢰 수준이기는 하나 기록자 요한이 즐겨 쓰는 표현이었다. 반면에 어떤 자들은 예수님의 원수들인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진상을 밀고했다(46절). 속된 말로 고자질한 쪼다들이었다. 결국 이 사건이 기폭제가 되어 예수님의 죽음으로 향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즉각 공회를 소집했다(47절). ‘대제사장들’, 원래 한 명이어야 할 대제사장이 편법으로 복수였고, 레위지파에서 아론의 후손으로만 이어져오던 대제사장들이 어쩌다 사두개인들이 독식하게 되면서 원래 원수지간이던 사두개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서로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하나가 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적은 어쩔 수 없이 사실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표적을 행하는 예수님을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게 될 것과 군중들이 그를 따라 봉기를 일으키고 진압을 위해 로마군이 투입되면 자신들의 권력과 부가 다 붕괴될 것을 우려했다(48-49절). 예수님의 영향력을 두려워한 것이다.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의 적수 역할은 주로 바리새파가 앞장섰지만 여기서는 대제사장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대제사장 가야바(주후 18-36년 재임)는 ‘귀찮은 말썽장이 예수’(?)를 제거하면 온 민족과 자신의 안전이 보장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런데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께서 죽으실 것에 대한 예언까지 했다. 냉소적으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하나님의 큰일을 예언하는데 쓰임 받은 것처럼 됐다. 그래서 쓰임 받는다는 것을 무조건 귀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될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강퍅함을 들어 쓰기도 하셨고, 당나귀도 쓰셨고, 가야바도 쓰셨고, 가룟 유다도 쓰셨기 때문이다. 그들의 쓰임이 귀한 쓰임은 아니다. 요한은 지속적으로 쓰임 받는 것보다는 관계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다. 여하튼 이 날의 모의로 예수님은 수배자가 되셨다(53절). 요한은 55절에서 ‘유월절이 가까우매’라고 표현함으로써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시간이 가깝다는 것을 암시하며, 예수님은 제자들과 조용히 지내셨고, 그들은 예수님을 찾고 있다(55-57절)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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