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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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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이번 겨울엔 유난히 부고訃告가 많이 전해진다. 국내외의 지인들로부터 전해지는 소식은 기쁜 내용보다 슬픔을 전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한 주간에도 몇 명씩이나 별세했다는 전갈이 온다. 과거처럼 부고가 문서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기에 별세를 알리는 문자가 뜰 때면 가슴이 철렁한다. 누가 되었든 전해지는 부고는 만감이 교차하게 한다. 단지 한 사람의 별세가 아닌 지난 시간 속에서 함께 만들었던 일과 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관계는 나와 우리, 나아가 지구인들 모두에게 그 나름의 의미를 만든 것이기에 전갈이 올 때면 잠시 상념에 젖게 된다.

별세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정한 이치이기에 누구도 예외 없이 그 길을 갈 것이다. 어떤 시인은 인생은 편도승차권만 갖고 왔기에 돌아가거나 다시 왔다가 갈 수 있는 경우는 애초에 허락되지 않았다고 노래했다. 그렇거니 하면서도 먼저 간 이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아쉽고 슬프다. 혹여 생전에 아픔과 어려움이 있었던 관계라고 할지라도 별세함으로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네의 정서다. 그만큼 별세의 길을 간 자에 대해서 산자는 너그러울 수밖에 없는 것인가 보다. 어쩌면 그것이 자신도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전해지는 부고마다 다가오는 느낌이랄까, 감정이 다른 것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을 갖고 있는 인간으로서 자신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단지 필요나 필연에 의한 관계를 넘어서 인생을 살면서 함께 하는 관계가 어떤 것이었느냐 하는 것은 결국 부고를 전해 받으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의 다름인 것 같다. 언젠가는 그마저 모두 잊어버리겠지만 적어도 기억을 나눌 수 있는 한에서 기쁨과 의미를 더할 수 있는 관계로 사는 것이 별세 앞에서 느끼는 감정도 아쉽거나 원망스럽지는 않게 되지 않을까.

비록 인생에 있어서 직접적인 관계가 아닌 간접적, 내지는 사회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부고를 전해 들으면서도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인간이 독존할 수 없고, 사회적 관계이서 간접적이지만 자신의 존재의미를 확인하거나 형성하는 영향을 준 사람들이기에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사회 지도자의 부고가 전해진다면 비록 혈족이 아니고, 학연, 지연조차 아니라고 해도 사회적 관계에 있어서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사람이기 때문에 감정이 각각 다르게 느껴진다. 그러니, 자신만이 아니라 모두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살아야 하는 것이 지혜련만 인간은 자신에게만 집중하기에 이 또한 어리석음이 아닐까.

지난 주 갑자기 부고가 전해졌다. 부산에 도착해서 그날의 일정을 소화하고 마무리를 할 즈음이었다. 대학의 은사님이 별세하셨다는 것이다. 잠시 후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소식을 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장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상의 내지는 요청이었다. 부고를 전해 받으면서 내 마음은 복잡했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애를 써야 했다. 분명한 것은 아무런 생각이 없어지는 것 같은 멍~ 한 느낌이었다.

선생님과의 관계가 복잡한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컸던 것인지, 그저 잠시 동안 아무런 생각도 없이 멍해졌다. 여러 곳에서 전화를 받으면서 ‘아! 내가 선생님의 길을 따랐던 사람인 것은 분명한 가?’ 그랬기에 사람들로부터 선생님의 장례를 어떻게 치를 것인지 문의를 받게 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수습을 해야 했다. 하지만 마음에서는 선생님에 대한 아쉬움으로 인해 복잡했다. ‘그리 가실 것인데 며칠 전 찾아뵈었을 때 뭔가 말씀이라도 하시지.’ 아무말씀도 없이 여전히 신학에 관한 말씀만 하시다가 힘들다 하셔서 자리를 일어섰는데, 그리고 다시 뵙자고 인사를 나눴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부산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전화상으로 장례문제를 정리하면서도 선생님에 대한 아픔 마음에 먹먹했다.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이라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다만 전화로 장례절차를 최종 확인하고 다음날 일찍 장례식장으로 가야 했다. 제자들을 중심으로 모였다. 장례를 주관하면서 선생님께 대한 아쉬움과 선생님이 남기신 짐이 내게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한 동안 말문을 열수 없었다. 역시 선생님은 내게 그만큼 영향을 많이 주신 것이리라. 그렇게 가깝지 않은 것 같은 관계였는데 모두가 내게 장례문제를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가까웠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선생님의 부고는 ‘관계’와 ‘사명’에 대한 깨닫게 하는 마지막 교훈이었다.

그리고 아무말씀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마 내게 그것이 짐이 될까 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선생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마음에 죄송스럽기만 했다. 이미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고 판단하신 선생님이시기에 굳이 다시 그 말을 하면 못내 더 힘들어할 것을 걱정하신 선생님만의 헤아림이었던 게다.

언젠가 내가 별세의 길을 가야 할 때 나는 지인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여겨질까? 추운 겨울날 부고를 전해 들으면서 생각하게 되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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