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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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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장자옥 목사

 

예수님도 친히 “나는 전도하기 위해서 왔노라” 하셨다. 이른 아침부터 다른 동네로 전도차 가셨다. 그리고 제자를 불러 세울 때도 삶의 현장에서 세베데의 두 아들과 마태 베드로를 찾아가 불렀다. 오늘날 성도들이 전도가 어렵다 어렵다하여 미리 포기하고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그런 성도들의 집안이나 형제간 지인들 가운데는 안 믿는 사람이 반드시 내재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전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로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 복음 안에서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는 체험을 해야 한다. 요한복음 4장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의 전도과정에서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 이십니다” 하다가 “메시야가 오시면...” 하는 가운데 주께서 “내가 그다” 하실 때 영안이 열리게 된다. 그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자 그 순간 물동이를 버려두고 자기를 멸시하는 동네 사람들에게로 내리 달려가 “내 과거를 훤히 들여다보시는 이를 만났다. 가서 만나 봅시다.” 사실은 자기 스스로도 역겹게 느껴오던 사람들 틈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는 열심을 품을 뿐 아니라 성령 충만해서 심령이 전도 열심히 불타올라야 그때부터 가능한 것이다. 우선 강단에서 말씀부터 달라져야 한다. 어느 날 열심 있는 성도들이 “우리 목사님은 강단에서 「전도합시다. 전도해야 합니다.」 선포를 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한다.

둘째로 전도는 묵묵히 자기희생을 실천해야 가능해진다. 한 20년 전 김해 덕두교회에 어떤 중년 남자 성도가 주일에 성미를 꼭 가져오고 예배는 처음부터 마루에 무릎 꿇고 않아 드렸다. 가을이 되면 리어카에 십일조를 싣고 왔다. 남편 신앙을 반대한 아내와 아들이 아버지 목에 칼을 들이대고 예수 안 믿기로 항복을 강요하는데 가까스로 빠져나와 그날부터 교회에서 밤을 세워가며 이집 저집 일을 하여 주일을 지켰다. 그러다가 암에 걸려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아내와 아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천국 가셨다. 이렇게 남편이 죽은 후 아내와 아들이 회개하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데 아버지를 그대로 따라 잘 믿게 되었다. 가르치는 대로는 살지 않으나 보여주는 대로는 따라 산다. 묵묵히 자기 신앙의 길을 가는 가정선교사, 친척 선교사가 되어야 전도가 된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믿는다는 욥의 믿음만이 가족, 친척, 친지를 믿게 할 수 있다. 철저한 불가지론자 이어령 박사님의 딸 이민아씨의 믿음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결혼 5년 만에 파경을 맞은 첫 번째 결혼. 홀로 몸부림치며 믿음으로 살려는 그에게 찾아온 갑상선 암, 재혼하여 낳은 아이의 자폐아 판정, 말기 위암 판정, 그리고 때 이른 죽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죽음 앞에서 고백하기를 “이 땅에서 온전히 치유를 다 받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는 믿는다.”고 말했다. 이 금쪽같은 딸의 불로의 믿음 앞에서 이어령 박사도 결국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말았다.

넷째, 하나님 아버지의 진심을 알아야 전도하게 된다. 태평양 연안에 천축잉어가 산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그 알을 입에 담아 부활시킨다. 수컷은 알이 부화 할 때 까지 아무것도 못 먹고 급기야 알이 부화하는 시점에는 쇠잔해 새끼를 토하면서 죽고 만다. 죽음이 두려우면 입안의 알을 뱉으면 된다. 하지만 이 아버지는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길. 죽음을 선택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다. 이 죄인들을 살리려 아들은 십자가에 던져버리는 아버지의 사랑. 이 사랑을 아는 자. 이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성도에게는 전도가 결코 짐 일 수 없다. 전도가 수고일수는 더 더욱 없다. 그것이 그렇게도 못할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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