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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가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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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39

 

나사로가 죽다

요11:1-16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3절) 감람산 근처의 베다니에서부터 베뢰아까지 달려온 사람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마리아와 마르다 두 자매가 보낸 사람인데 나사로가 지금 사경(死境)을 헤매고 있다고 비보(悲報)를 전한 것이다.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 이 3남매는 요한의 표현에 의하면 예수께서 ‘본래’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마 예수님이 여러 번 그들의 집을 방문하면서 맺어진 관계인 것 같다(참조, 눅 10:38-42). 나중에 예수께서 그들의 집에 도착하셨을 때 마르다가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21절)라고 했던 말을 마리아도 똑같이 한 것(32절)을 보면 두 자매는 예수님만 빨리 오신다면 오라비 나사로가 결코 죽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했던 것으로 보인다. 두 자매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한은 이 11장을 기록할 때 먼저 3남매의 예수님과의 관계를 특별히 부각시켰다. 그들이 예수님의 측근이자 각별히 사랑받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요한은 이것을 반복해서 강조했다(3, 5, 36절). 예수님이 ‘본래부터’, 즉 오래전부터 사랑했고, 그들의 사랑의 관계가 특별한 것을 알만한 유대인들은 다 안다고까지 했다. 다른 복음서의 기록을 빌리면 특히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씻겨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함께 전하라고 하셨던 바로 그 여인이다(막14:9).

 

두 자매는 오라비 나사로가 병명은 알 수 없지만 병들어 사경을 헤매는 상황에서 예수님께 긴급 SOS를 보냈다. 3남매 모두에게 빨간 불이 켜진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나사로만이 아니라 3남매 모두의 긴급 상황이라고 보는 이유는 그들이 등장하는 성경에 단 한 번도 부모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나사로가 가장(家長)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렇다면 나사로가 죽을 경우 당시 사회에서 그 누이들은 창기(娼妓)를 제외하고는 특정한 직업을 가질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히 사람을 보냈지만 예수님의 반응은 너무 의외였다.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4절)이라시며 걱정하거나 다급해 하는 마음조차 보이지 않으셨다. 심지어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11절)라고 하시고, “나사로가 죽었느니라”(14절)라고도 하시며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기뻐하노니”(15절)라고 표현하시는 등 엉뚱한 소리, 섭섭한 소리를 계속하셨다. 횡성수설 하실 분도 아니고, 아마 당사자라면 요즘 표현으로 ‘급 실망’했을 수 있다. 무슨 뚱딴지같은 말씀만 하시냐며 삐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 고쳐주는 것이 사랑 아닐까? 그런데 말씀만 그렇게 하시는 게 아니라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留)하셨다고 했다(6절). 뭘 하셨는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일부러 시간을 보내셨고, 나흘 후에야 찾아가셨다(17절). 모리스는 이 ‘나흘’은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하는 데 하루, 예수께서 계셨던 곳에 그냥 머물러 계신 이틀, 그리고 나사로의 집으로 가시는데 하루로 계산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지체하셨을까? 여기에 중요한 핵심이 있다. 이는 요한복음서에서 반복되는 테마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원하는 때와 방법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님을 깨닫기 원하셨다.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9절), 아직은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아니라는 말씀이다. 나사로의 죽음, 누가 봐도 비극이지만 예수님은 지금 차분히 새로운 지평을 열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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