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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적 예배 (눅4: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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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적 예배 (눅4:16-22)

-예배의 목적은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 즉 메시아이심을 증거 하는 것이다.

 

Ⅰ.예수님은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눅4;16). 이는 당시 규례를 따른 행동이다. 일상생활에서 당연히 지켜야 할 규칙과 정해진 관례를 규례라고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메시아이시면서 이 규례를 존중하고 지키셨다. 그는 지금 가르치고 증거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회당에 들어가셨다.

우리는 주님의 이 모습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 당시에는 구약의 규범을 따라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켰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완성된 안식일의 날로 일요일을 주일 즉 주님의 날로 지킨다. 자신을 위해 자신이 마음대로 사는 날이 아니고 주님을 위해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날이다.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할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주님처럼 교회당에 나아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다. 성도가 자신의 영혼을 성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예배이다. 예수님 당시 회당의 가르침은 정확하지 못했다.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으로 인해 인본주의적인 모습이 회당 안에 가득했다. 영적으로 매우 어려운 때였다. 경건한 사람들이 회당에 가서 별로 얻을 것이 없는 때였다. 그러나 주님은 안식일에 그 회당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셨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교회가 너무 세속화되어서, 또는 교회가야 별로 배울 것도 얻을 것도 없기 때문에 교회 다니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히10:25).

 

Ⅱ. 예배의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눅4:16에 “예수께서…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라고 했다. 예수님은 회당에 서서 성경을 읽으셨다. 주님은 이사야 61:1-3을 읽으셨다. 주님은 자신의 말씀보다 성경말씀을 설명하셨다. 주님은 회중들이 자신을 주목하게 하셨다. 이 성경의 예언의 성취가 예수님에 의하여 이루어짐을 알게 하려는 의도였다. 주님은 자신에 관하여 예언한 성경의 말씀을 읽어주셨다. 그리고 자신을 메시아로 알려주심으로 그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회중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셨다. 예배의 목적을 잘 알려주는 부분이다. 예배의 목적은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 즉 메시아이심을 증거 하는 것이다. 예배의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려고 해야 한다. 이는 성경전체가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요5:39). 성경에 기록된 어떤 사람을 모범자로만 소개한다면 이는 바른 증거라고 할 수 없다.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의 말과 행위도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배의 주인공은 예수님이다. 만일 예수님이 아닌 사람이 주인공이 되면 그 예배는 참 예배가 될 수 없다. 예수님을 바로 전하면 성령의 역사들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게 된다. 성령님은 예수님에게도 임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기름 부어 주셨다. 교회 안에서 참되게 예수님을 전하면 성령님의 강한 역사가 임할 것이다. 성령님의 사역도 역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요15:26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라고 했다.

 

1.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질 것이다. 눅4:18에“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라고 했다. 가난한 자란 경제적으로 빈곤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를 의미한다(마5:3). 교회에 나와 복음을 듣는 중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2.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준다. 눅4:18에 “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이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죄로 인해 악한 마귀의 포로가 되어 있다.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에게서는 사탄이 쫓겨난다. 그는 자유 함을 얻고 살게 될 것이다. 예배를 통해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3.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할 것이다. 눅4:18에 다시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라고 했다. 진리에 대해 깨달음이 없는 사람이 눈 먼 사람이다. 주님은 진리를 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셨다(요9:39). 4.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한다. 눅4:18에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라고 했다. 눌린 자란 죄 때문에 마음에 항상 죄의식으로 고통 받는 자들이다. 세상에는 죄로 인해 억압받고 마음이 상한 자들이 많다. 주님은 이들을 거듭나게 하심으로 죄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시며 마음에 평안을 허락하신다. 5.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한다. 눅4: 19에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다. 주의 은혜의 해란 레25:8-13에 나타난 희년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에게 빚을 지고 못 갚으면 채권자의 종이 된다. 그러나 희년이 되면 종살이에서 해방 받는다. 자유 함만 가지고는 살 수 없다. 이전에 팔았던 토지나 가옥을 다시 돌려받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런 자유와 생활을 보장받는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마다 이런 희년의 기쁨을 느껴야 한다. 예배는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행위이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가장 기쁘시게 우리를 만나주시는 은혜의 시간이다.

 

Ⅲ. 가장 은혜롭게 인도하셨다. 눅4:22에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을 증거 하시자 저희가 다 그를 증거했다. 그의 입으로 나오는 말을 기이히 여겼다. 시45:2은 예수님에 대해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라고 예언했다. 예수님의 관심은 회중의 인기나 그들이 드리는 헌금이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회중들의 영혼이었다. 그는 앉아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의 은혜로운 말씀은 이슬과 같이 사람들에게 촉촉이 젖어들었다. 그의 말씀을 듣자 깨달아지고 믿어졌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그들에게 임했다. 마음에 위로가 되고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 예수님을 모시고 예배드리는 오늘의 모든 교회에서도 성령님이 주시는 이런 은혜가 반드시 임하게 되어 있다. 이런 은혜를 통해 성도들이 마음에 힘을 얻어 새롭게 성장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다 은혜 받은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한 것은 조롱하는 말이다. 예수님이 직접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하는데도 은혜 받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 하물며 사람이 인도하는 예배에야 말할 것도 없다. 마치 식당을 옮겨 다니듯이 교회를 옮겨 다니는 자들이 있다. 철새교인이다. 그러나 한 교회에 정착하여 그 예배를 통해 정상적으로 은혜 받는 성도의 겸손함이 필요하다.

 

신재철(초원교회 담임목사, 부산외대 겸임교수, 한국교회 송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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