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道

근년에 들어 걷기 열풍이 불면서 각 지자체들은 앞을 다투어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경쟁을 하고 있다. 걷기 열풍은 국내에서 그치지 않고 해외로까지 이어지면서 외국에서도 이어지는 한국 사람들의 방문 때문에 놀라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가까운 일본의 큐슈는 아예 제주도의 올래길을 벤치마킹해서 <큐슈 올래길>이라는 이름으로 길을 만들어 한국인들을 유치하고 있다. 물론 일본인들의 걷기 운동을 유도하기 위한 프로젝트였지만 일본인들보다 한국인들이 더 많이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멀리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가는 길까지 한국인이 북적거린다는 소식이다.

걷기 열풍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자체들은 새로운 길을 만들기 위해서 지역의 역사나 환경조건에 따른 이름을 발굴하고 있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길을 만들고 있다. 걷기에 편리하도록 위험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곳에는 교량이나 데크를 설치해서 걷는 사람들의 안전과 편리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후관리를 위한 예산과 손길도 만만치 않지만 아낌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그렇게 길을 찾고 있을까? 길을 찾기 위한 열풍은 왜 식지 않을까?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선 ‘건강’을 위한 선택이다. 일단 먹는 것이 해결된 상태에서 당면한 문제는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가가 가장 현실적인 필요로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자동차를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이제는 일상생활을 하면서 걷는 일이 없어졌으니 일부러 걸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불과 30여년전 시작된 자가용시대. 이제는 자가용이 주요 교통수단이 됐다. 집을 나서자마자 걷는 일이 없어졌으니 허약한 체질로 바뀔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시간을 내어 걷기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자가용시대 시작 불과 30년 만에 건강문제가 발목 잡힌 것이다.

그런가 하면 경제적 여유로움과 함께 문화적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출구가 걷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걷는 것은 단순히 운동이 아니라 자기 성취감을 주는 문화생활인 셈이다. 예를 들어 제주도 올래길을 걷는다고 하면 일단 제주도에 가야하고, 1코스부터 마지막 코스까지 걷겠다는 목표가 생긴다. 그 다음은 코스별로 무엇을 보아야 할지, 그곳에는 무엇이 있는지? 잠시 쉬거나 먹을 수 있는 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러한 것들을 조사하고, 알아봐야 한다. 다음은 그 길을 걸으면서 만나게 되는 환경과 사람들을 통해서 이야기와 추억, 그리고 완주하는 성취감까지 더하게 된다.

그런가하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걷는 것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길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닐까. 걷기 위해서 특별히 배워야 할 것은 없다. 미리 준비하거나 배워야 하는 특별한 것도 없다. 다만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정보만 있으면 되는데, 그것은 현장에 도착해서도 가능한 것이고, 같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더 더욱 문제가 없다. 어떤 의미에서 문화적 욕구의 연장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인데, 시간적인 여유와 걷겠다는 생각만 있으면 즉시 가능한 것이 걷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걷기 열풍이 일어났고 지속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길은 본래 사람과 사람,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통로였다. 그것은 생활을 위한 인간의 행동이 남긴 흔적이고, 동시에 ‘너와 나’를 이어가는 통로였다. 그렇다면 단지 걷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너’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길을 의식하고 걷는다면, 그 길은 이웃과 과거를 넘어 좀 더 궁극적인 것까지도 깨닫게 할 것이다. 인간은 ‘너’와 더불어 살고, ‘너’와 더불어 삶의 의미를 만들고 누린다. 그러한 의미에서 길은 ‘너’를 향한, ‘너’와 동행하는 길일 때 아름다운 것이리라.

길은 앞을 향하지만, 그 길을 과거로부터 만들어졌음을 생각한다면 길은 동시에 과거를 향한 것이다. 그 길에서 선인들과 그들이 남긴 역사를 만날 수 있다면 걷는 자에게는 또 다른 동행이 될 것이다. 과거와의 동행은 길을 걷는 자에게 풍요로움을 더한다. 그러한 의식과 함께 걸을 수 있는 동행까지 있다면, 그리고 그 길에서 ‘너’를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길은 없으리라. 더욱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길을 따라 걸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길을 걸으며 깨달을 수 있는 사유와 느낌,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하나님은 위로와 힘이 될 것이다.

또한 시간과 공간을 넘어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는 이웃과 벗이 있다면 그 사람은 더 행복한 사람이고, 그 길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