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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의 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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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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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의 님들

 

이른 새벽길을 나섰다. 새벽부터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버겁지만 일정상 어쩔 수 없었다. 안양에서 만나기로 한 모 기독교방송국 제작팀과 합류해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태양이 아침을 열었다. 휴게소에 들러서 간단히 아침식사까지 마치고 서둘러 도착한 곳은 군산이다.

차안에서 담당 PD와 카메라 감독은 촬영 일정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과 이야기를 나눴다. 130년 전 이 땅에 와서 복음을 전했던, 그리고 은둔의 나라 사람들을 아낌없이 사랑했던 벽안(碧眼)의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그들에게서 시간을 넘어 그들에 대한 설렘이 느껴졌다. 비록 직업이긴 하지만 선교사들이 이 땅에 와서 남긴 족적을 찾아가는 그들의 모습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만큼 내게 묻고 싶은 것도 많은 것 같았다. 다른 개인적인 이야기는 거의 없이 도착하기까지 내내 그들의 관심은 오직 촬영 대상들인 벽안의 님들에 관한 것뿐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장비를 준비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벽안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족적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흥분과 호기심,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나 역시 매번 그들의 삶과 남긴 이야기들을 아는 만큼 설명하지만 늘 새롭기는 마찬가지다. 제작팀은 일정 때문에 서두르면서도 한 장면이라도 더 담으려고 카메라 감독은 쉴 틈이 없이 움직였다. PD역시 현장에서 느끼는 130년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선교사들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내려야 할는지 고민을 했다.

전주, 순천, 그리고 여수의 애양원병원까지 1박 2일의 일정으로 강행군을 했다. 가는 곳마다 만나게 되는 벽안의 님들은 단지 지난 과거에 우리를 위해서 복음과 사랑을 전해준 사람들로 과거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이 남긴 사랑은 지금도 따뜻하게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가는 곳마다 지금도 우리를 향해서 온몸으로 전해준 사랑이 느껴졌다. 제작을 책임진 PD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그들의 행적을 단지 과거의 사건으로가 아닌 지금도 그들이 전해준 복음과 남긴 사랑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역력했다. 그만큼 내게 묻고 싶은 것도 많아진 탓일까 촬영 내내 질문이 그치지 않았다.

나 역시 30여년 가깝게 한국교회에 남겨진 신앙의 유산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그리고 호남지방의 유적을 안내하는 일을 수없이 했지만 갈 때마다,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님들과 그들의 행적은 새롭게 느껴진다. 그들의 삶은 내 자신에게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하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더 다잡아 하게 한다. 레이놀즈, 전킨, 테이트, 포사이드, 크레인, 린튼, 그리고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로 세상에 알려진 서서평(Johanna Elisabeth Schepping)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영혼들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남긴 족적은 떨리는 마음으로 그들 앞에 서게 한다.

그들이 남긴 것들은 어떤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당시 조선을 선택했던 것은 개인의 평안이나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복음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그리고 그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소명에 대해서 응답한 그들이었다. 조선에 온 그들의 삶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은 그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수많은 선교사들과 그 자녀들이 뜻과 생애를 다 하지 못한 채 풍토병나 사고로 별세의 길을 가야만 했다.

그들이 잠들어있는 묘역을 찾을 때면 더 숙연해진다. 그 중에도 호남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전킨은 질병으로 자녀들을 모두 잃었다. 그의 묘 앞에는 먼저 별세한 아이들 셋이 나란히 누워있다. 잠든 채 아버지의 품에 안긴 듯, 살아서 다하지 못한 사랑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아니 영원히 하겠다는 듯 세 아들을 품고 있다. 한국 선교초기에 만연했던 한센병 환자들을 끌어안고 사랑했던 포사이드와 그 후배 선교사들은 환자들과 함께 쫓겨 지금의 애양원까지 가야 했다. 애양원에서는 지금도 벽안의 님들이 남겨준 주님의 사랑을 뜨겁게 느낄 수 있다.

미지의 땅, 은둔의 나라에 와서 아낌없이 나눠주었던 그들의 뜨거운 사랑이 오늘 한국교회를 있게 한 것이련만 정작 우리는 그들을 잊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그리고 그들이 베푼 사랑을 자신의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왠지 한국교회에서 그들이 전해준 주님의 사랑이 점점 식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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