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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명 선교사의 노후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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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명 선교사의 노후 보장

장자옥 목사

 

며칠 전 중국 복건성 천주시에서 사역하는 김영태, 안기숙 선교사 내외와 우리 부부가 시청 앞에 있는 곤드레밥 집에서 점심을 나누면서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다. 천주시는 중국남쪽에 위치한 인구가 600만 도시이다. 중국은 익히 아는 대로 3자교회만 인정하고 가정 교회는 불인정하는데 선교사라도 직접 전도는 허용되지 않고 자국민 전도자도 18세 미만 청소년에게는 절대 금지하고 있다.

김 선교사의 헌신 : 김 선교사는 청년시절 간석제일교회에 나왔고, 고교 졸업 후에는 전기제품 제조하는 회사에 다니며 조용하게 신앙생활을 했다. 그즈음 지금의 안기숙 선교사와 결혼하여 넉넉하지는 못했어도 10여년을 단란하게 지냈다. 첫째 딸 안나, 둘째 한나 낳고 40이 가까운 어느 날 돌연 중국 선교사로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그간 나름대로 기도하면서 부부가 준비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교단 후원도 아니고 몇 개교회의 후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교회에서는 지금까지 후원하고 있다.

중국선교 20년 : 처음에는 산동성 연태. 중경을 거쳐 지금 천주로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몸도 그렇게 건강한 것 같지 않았지만 이제 회갑 나이에 이른 것이다. 터놓고 직접전도가 불가능하였기에 처음에는 대학교에서 언어 연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접촉하면서 선교하였고 나이가 들면서는 대학생들에게 전도하여 양육시켜서 리더로 길러 지금은 그 양육자들로 하여금 전도하게 하고 자신은 1~2학년생들에게 개인전도하여 그들에게 구원의 확신과 성경적 신앙생활을 가르치며 양육하는데 그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선교 본부나 지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선교 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부에 대학생들에게 네비게이토와 같은 방식으로 선교하고 있는 것이다.

두 여식. 교육과 결혼 : 큰 아이 안나는 초등학교 때 전학만 8번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혼자 공부하면서도 가는 중국학교에서 줄곧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북경에서 대학을 나온 후 한국에 돌아와 외가에 머물면서 선교기관에서 봉사하다가 장로교 합동측 목사님 아들과 교제를 하다가 축복 속에 결혼하였다. 신랑은 대학원에 다니는 목사후보생인데 안나도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를 하고 있다. 안나도 중국에서 대학을 나와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데 형부의 소개로 회계사인 장로님 아들과 결혼을 했다. 남편은 지금 합신측 전도사로 안산에서 사역하고 있다. 사실 나는 선교사들의 노후에 대해 늘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김영태 선교사 부부의 노후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특히 교파적인 후원도 없고 너무 착하디착한 부부는 어디다 얼굴 내밀 수 있는 매너도 없는 분들이다. 그런데 그들 부부에게서 안나와 한나의 결혼 이야기를 들으면서 손뼉을 치며 “아! 하나님이 그렇게도 자상하신 분이셨구나 김 선교사 이제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우리 부부의 마음이 얼마나 뿌듯한지 김 선교사 부부의 얼굴을 한 끗 쳐다보며 흐뭇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부인 선교사께서도 두 딸이 목회자 남편을 만나 그렇게 행복한 가정을 이룰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감격하며 간증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섭리와 보장 : 하나님은 사명자가 자기 길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의 삶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임지시고 승리하게 하신다. “너의 염려를 주게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라.”(벧전5:7) 이 신실하신 말씀의 실현을 김영태 선교사 부부의 사명과 삶에서 확실하게 목도 하였다. 이렇게 은혜스러운 만남의 시간은 어느 순간에 4시간이나 흘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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