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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 그리스도(슥9: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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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 그리스도(슥9:9,10)

-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시고 그의 나라는 진정한 평화의 나라가 될 것이다.

 

스가랴는 기원전 5세기의 선지자였다. 그는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성전재건을 촉구했던 선지자였다. 그는 학개 선지자와 동시대에 활동했으나 학개가 언급하지 않았던 메시아에 대해 많은 예언을 했다. 성경 스가랴에는 이사야를 제외하고는 메시아에 대한 가장 많은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스가랴 9장에서 14장까지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과 그의 나라에 대한 기록이므로 이 책의 3분의 1은 메시아 예언이라고 할 수 있다.

 

1. 메시아 예언

스가랴는 오실 메시아를 여러 가지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 한 가지가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 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이다(슥9:9-10). 이 말씀은

1)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 예언은 이미 1500년간 계속되고 있었다. 창세기 3:15에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다. 이 때는 예수님이 출생하기 3500년 전의 일이다. 구약에는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350여 회나 기록되어 있다. 간접적인 것까지 포함한다면 약 450여 회 예언되었다. 예수님에 대한 구약의 마지막 예언은 말라기 4:2이다. 이후 약 350년이 지나 예수님은 예언대로 다윗의 후손으로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셨다.

2) 예수님의 오심은 큰 기쁨의 소식이라는 점이다. 스가랴의 메시아 탄생에 대한 예언이 시작되는 9:9 서두에서는 그리스도의 탄생은 기쁨의 소식이며, 우리 모두의 기쁨이라고 말한다. 눅2:10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말한다. 메시아가 탄생한다는 희소식의 범위는 전 우주적이며, 전 민족적이며, 전 세계적이며, 그 희소식의 정도는 그 어느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큰 기쁨의 소식”이라고 말한다.

3) 메시아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겸손한 왕이라는 점이다. ‘공의로움’은 우리가 소망하는 가장 고상한 가치이다. 이 세상의 어느 통치자도 모든 이에게 공의롭지 못했다. 이 세상 어느 통치자가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의로움을 지닐 수 있겠는가? ‘구원을 베푸심’은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구원할 능력 있는 분임을 드러낸다. 예수님만이 인간을 죄악에서 건져낼 수 있는 유일한 분이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심’은 겸손을 의미한다. 그는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말구유에 나셨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자기 백성의 죄를 담당하셨다. 이 예언은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심으로 그대로 성취되었다(마21:1-10, 막1:1-10, 눅19:28-40, 요12:12-16).

4) 예수님께서 평화를 이루실 것을 말씀했다. 말하자면 그는 평화의 왕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슥9:10절의 ‘병거’나 ‘말’이나 ‘활’은 다 전쟁의 도구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시고 그의 나라는 진정한 평화의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예수님을 평화의 왕이라고 했다(사9:6).

 

2. 가장 고상한 가치, 평화

평화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주된 인사말이었고, 바울은 이방인이었던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말씀하면서 복음의 핵심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화평(평화)의 복음”이라고 정리했다(행10:36).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신자들에게 화평의 복음으로 신을 신으라고 했다(엡6:15). 또한 에베소 2장 이하에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화평케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 이 둘로 자기 안에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셨다”고 했다(엡2:14-15). 평화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샬롬’(םוֹל󰚂)은 흔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보다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샬롬은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할 뿐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도 모든 갈등과 대립이 없는 평안과 기쁨을 의미한다. 샬롬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사람들과의 온전한 관계에서 오는 안녕(well-being)의 상태를 뜻했다. 신약에서 평화란 용어도 구약의 샬롬과 동일하다. 평화를 의미하는 ‘에이레네’(έιρήνη)는 ‘연합’이라는 어근에서 나온 말로서 전쟁이 없고, 적대관계나 갈등이 해소됨으로서 이루어지는 질서와 조화의 상태를 의미한다. 즉 전쟁이나 분쟁의 반대 개념(눅14:32, 행12:20)으로서 인간 공동체 내의 화합(마19:34, 눅12:51, 고전7:15)과 안녕을 의미한다.

 

3.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지상에 진정한 평화를 주는 사건이었고, 그가 이룩할 나라는 진정한 평화의 나라이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평화의 시대를 예고했다(사9:2-7).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누가는 “하늘에서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라고 노래했다(눅2:14).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그 안에 진정한 평화가 있고, 그의 나라는 평화의 나라이다. 분열과 대립, 긴장과 갈등, 분노와 적의, 살인과 전쟁이 계속되는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신재철(초원교회 담임목사, 부산외대 겸임교수, 한국교회 송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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