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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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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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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녘의 빛깔이 아름답다.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이지만 어느새 들녘이 색색의 물을 들이고 있다. 논에도 밭에도 파스텔톤의 물감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보는 순간 ‘아니, 벌써!?’ 외마디의 감탄은 빠른 세월에 대한 푸념인지 모르나 자신도 모르게 들녘에 물들어가는 가을 정경에 감격하게 된다.

농민들이 현장에서 직접 판매하기 위해 걸어놓은 현수막이나 판자나 두꺼운 종이에 농산물 판매를 알리는 어설픈 광고문이 아니더라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탐스럽고 아름다운 열매들이 길가에 즐비하다.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던 것이 엊그제 같고, 비바람과 싸우던 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들녘에는 풍성한 열매들이 가득하다. 순서에 따라서 하나씩 거둬드릴 테지만 그 과정에서도 들녘은 아름다운 가을을 연출할 것이다. 열매가 익어하는 아름다움, 추수하는 과정에서 비워지는 아름다움, 색상의 연출과 기하학적 모양을 더하는 들녘이 만들어주는 아름다움까지, 가을이 연출하는 대지는 어느 화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지나는 길, 잠시 눈길을 멈춘다. 언젠가부터 입버릇처럼 시간의 흐름에 놀라는 의미가 더해진 감탄을 하게 된다. 대지의 생명들이 열매를 맺은 것에 대한 감격이라기보다는 자신이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났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 더 큰 충격과 함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무감각한 채로 여름을 보냈는데, 어느 날 형형색색의 가을 색으로 치장한 들녘을 보면서 자신의 게으름, 무감각, 무관심을 자각하게 된다. 무엇에 분주한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무뎌진 것인지? 무심한 동안 비바람과 병충해를 견디면서 그들의 역할을 다한 생명들은 자신들만의 열매를 익혀놓았다.

지나는 길에 스스로 놀라고 있지만 정작 녀석들은 당연한 듯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농부들의 숨겨진 땀 흘림이 있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은 계절의 변화다. 온도, 습도, 일조량, 그 모든 요소는 결실이 있기까지 인간의 노력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농민들의 수고는 심고 가꾸는 일까지다. 실제로 열매를 익히고 수확하는 기쁨을 만들어주는 것은 ‘자연’이다.

하지만 ‘자연’은 스스로 있다는 의미의 ‘자연’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연’이라고 하는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현상이며 창조의 원리와 섭리이다. 누구도 볼 수 없는, 그러나 창조할 때부터 그 질서와 원리에 의해서 존재하도록 한 섭리의 현상을 인간은 ‘자연’이라고 한다. 그 질서와 원리를 창조하신 이래로 지금까지 보존하고 계신 것은 하나님의 의지(뜻)이며 간섭하심(섭리)이다. 창조자로서 하나님의 그 의지가 없었다면 오늘 모두가 말하고 있는 자연은 더 이상 ‘자연’이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을 보면서 가을이 익혀낸 열매들이 주는 풍요로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때를 알게 하는 깨달음까지 더하니 지나치는 가을이 무뎌진 자신을 깨달으라 한다. “넌 뭘 하고 있냐?”고 하는 듯한 ... 그래도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진다. 모진 여름의 비바람과 싸워 이긴 생명들이 누구도 흉내를 내거나 대신할 수 없는 각각의 모습과 색깔로 가을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벌써 가을이 깊다. 하늘도, 들녘도, 지나는 차창 밖으로 펼쳐진 고개를 숙인 나락들도 이 가을에만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고개를 돌려 대지에 익어가는 가을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도심에서 무뎌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다. 곧 2017년의 가을은 잊혀 질 것이다. 아니, 다시 그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창조주께서 만들어준 가을날의 아름다움을 놓지는 것은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아닐까. 눈을 들어 대지가 만들어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창조의 하나님, 섭리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특권일 것이다.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정작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 이 가을을 무심하게 지나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아니 가을이 무심한 인간을 위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그 사이로 내리는 햇살이 인간의 무심함을 깨우는 가을이 깊다.

 

이종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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