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목회 분류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나1:14-15)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나1:14-15)

-아름다운 소식이 영적으로는 구원자를 보내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나훔은 소선지서 가운데 일곱 번째 성경으로 주전 640-610년경에 기록된 것이다. 나훔은 요나와 함께 앗수르제국의 수도인 니느웨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요나는 니느웨의 회개를 촉구했지만 나훔은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했다.

 

Ⅰ. 니느웨의 죄

우상숭배의 죄이다(나1:14). 우상숭배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죄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죄이다. 배금주의의 죄이다(나2:9). 니느웨는 은과 금을 노략하여 그 저축한 것이 무한하고 아름다운 기구도 풍부할 정도로 재물에 심취해 있었다. 살인죄이다(나3:1-3). 니느웨는 세력확장을 위해 많은 침략전쟁을 통하여 무수한 약소 민족들의 피를 흘리게 했다. 음행과 마술의 죄이다(나3:4). 니느웨는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적국을 미혹했다. 이는 니느웨의 간교한 거짓정치나 외교술을 말한다.

 

Ⅱ.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다(나1:2). 나훔 선지자는 하나님은 질투하시며 보복하시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질투나 보복, 진노는 다 하나님의 언약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단어이다. 언약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정한대로 이루어진다(나2:7). 나2:13에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라고 했다. 이는 니느웨에게 임한 모든 심판이 하나님의 예언대로 된다는 말씀이다. 니느웨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대적이 되셨으니 망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심판은 결국 선민의 구원을 위함이다(나2:2). 무한 자비의 하나님이시다(나1:3-6). 하나님께서는 노하기를 더디 하신다. 죄인의 죄와 심판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는 그의 자비를 말함이다. 실제로 북이스라엘은 첫 왕 여로보암(주전930년)부터 하나님을 노하게 하다가 19대 호세아왕 때(주전722년)에는 결국 앗수르를 통해 심판받았다. 남쪽 유다도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하여 범죄 타락하자 135년이나 지난 주전586년에 바벨론을 들어 멸망당하게 했다. 이는 하나님의 인내가 얼마나 크신가를 깨닫게 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나1:3-6). 이런 전능하심이 선민을 구원하심에 자비로 나타났다.

 

Ⅲ. 니느웨 심판의 내용과 결과

니느웨 심판이다(나2:1-6). 니느웨는 적국의 침략을 받아 망한다고 했다(나2:1). 이는 니느웨가 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군대의 침략으로 망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때의 전쟁참상을 나훔은 용사들의 방패와 용사들의 옷이 붉다고 함으로 전쟁의 핏빛을 밝혔다. 앗수르가 망할 때 모든 세계가 그를 등지고 떠난다(나3:7). 죄인은 언제나 홀로 남게 되는 것이다.

니느웨 심판의 결과이다(나2:7-10). 니느웨의 이러한 심판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보응이다. 니느웨가 심판당할 때 이웃의 원조가 소용없다(나3:11). 군사적 요새지인 모든 산성이 처음 익은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흔들려 떨어짐같이 소용없다(나3:12). 니느웨의 장정들은 힘없는 여인같이 될 것이다(나3:13). 수비하던 성문들은 안전한 방어선이 되지 못한다(나3:13). 니느웨가 멸망을 면하기 위해 온갖 필사적인 방어수단을 동원하지만 모두 헛수고가 된다는 것이다(나3:15). 경제력 있는 상인들과 군사지도자들인 방백들과 장수들이 가진 힘은 모두 소용이 없다(나3:16-17). 백성의 지도자인 목자가 잠을 자고 귀족들은 방심하며 백성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다. 결국 니느웨의 멸망은 완전하고 영원한 것이다(나3:18-19).

 

Ⅳ.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나훔1장 15절에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라고 했다. ‘볼지어다’는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사용되는 전형적인 표현이다(사40:9). 하나님의 아름다운 소식이 구원역사를 통해 시대마다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구약시대에는 대적을 멸망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자신들을 억압하는 세력의 멸망만큼이나 기쁜 소식은 없다. ‘나훔’은 위로자라는 뜻이다. 내우외환으로 국력은 쇠퇴하고 민심이 도탄에 빠졌을 때 선지자 나훔은 선민의 대적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영광의 회복이 있다는 소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이는 니느웨에 의해 고통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 위로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름다운 소식이 영적으로는 구원자를 보내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아담과 하와의 반역으로 죄와 멸망의 자손이 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친히 구원의 약속을 선포하셨다. 인간에게 가장 기쁘고 아름다운 소식은 구세주를 보내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신약에 이르러 이 기쁨의 소식이 역사상에 사실로 나타났다. 성육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다. 예수님은 아름다운 소식의 현실화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야 한다. 아름답고 복된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위에 서있다고 했다.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것만큼 의미 있고 귀중한 것도 없다(사52:7). 주님께서도 복음전파의 사명처럼 크고 중요한 것이 없다고 강조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선포하신 하늘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은 자이다. 이 직무를 위해서 세월을 아끼고 정열을 투자해야 한다. 아름다움 소식을 전해 한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것은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는’(단12:3) 가치가 있다.

신재철(초원교회 담임목사, 부산외대 겸임교수, 한국교회 송사연구소장)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