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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같게 하옵소서(예레미야애가 5: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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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적같게 하옵소서(예레미야애가 5:19-22)

 

예레미야 애가는 예루살렘의 함락을 애도한 글로서 예루살렘의 함락 이후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근처 아나돗이란 동리에서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났다(렘1:1). 그는 유다를 요시야가 다스린지 13년부터(B.C.628) 시드기야 11년까지(B.C.568)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했다. 예레미야는 1장에서 예루살렘의 고통과 불행에 대하여, 2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3장에서는 선지자의 고통을 기록했다. 4장에서는 과거에 누렸던 시온의 영광과는 반대로 현재의 황폐된 시온을 그렸다. 마지막 5장에서는 하나님께 구원의 자비를 구하는 최후의 기도를 올렸다. 본문에서 예레미야는‘옛적 같게 하옵소서’ 라고 소원했다.

 

예루살렘의 참상은 비극 자체였다. 애 1장 1절에 “슬프다 이 성이여...”라고 했다. 7절에는 “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거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라고 했다.

남조 유다는 르호보암 때부터 애굽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그러나 주전 605년에 애굽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신흥제국 바벨론에 패한 후부터는 바벨론의 영향에 들었다(왕하24:1). 결국 바벨론은 유다를 침공하여 4차에 걸쳐 포로를 끌어갔다. 1차는 주전605년에 다니엘 등이(단1:1-5), 2차는 주전 597년에 에스겔 등이(왕하24:8-16) 포로로 끌려갔다. 그러다가 바벨론의 3차 침입으로 마침내 예루살렘은 주전 586년에 함락되었다(왕하25:8). 예레미야 애가의 내용을 보면 이일 직후에 기록되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탄식 중에 기도했다. 애 1장 16절에 “이를 위하여 내가 우니...”라고 했고, 20절에는 “여호와여 보시옵소서”라고 했다.

예레미야는 먼저 죄로 인해 멸망당한 예루살렘의 비참한 모습을 공개했다. 선지자는 이 일이 유다의 범죄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있어 희망적인 선포이다. 북조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망했다. 물론 언약에 실패했고 선지자들의 호소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형제의 나라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면서 남조 유다는 깨달았어야 했다. 그러나 유다는 동일한 범죄를 이어갔고 그 결과 136년이 지난 주전586년에 완전히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만 것이다. 만일 유다가 바벨론의 강성한 힘에 의해 망했다면 회복의 소망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죄로 인해 망했다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따라 온다면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선지자들은 죄로 인한 멸망을 예언하면서도 회개를 통한 회복을 동시에 예언했던 이유인 것이다.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애 5장 21절에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들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라고 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당하는 동족의 고통을 자신이 당하는 아픔으로 인식했다. 사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대언자의 소임을 다했다.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함으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징계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유다의 죄가 곧 자신의 죄라고 인식한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자신이 전했던 심판대로 심판을 당했으니 이제는 회복의 기쁜 소식도 전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에 불탔다. 이것이 고난 중에도 소망을 잃지 않게 했다. 그는 비록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셨지만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고 성실하심이 크다고 확신했다(애3:22, 23). 이런 이유에서 하나님께서는 결코 언약의 백성들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을 알았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리는 지혜가 있었다. 이제 예레미야는 유다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애 3장 40절에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라고 했다. 예루살렘이 유다의 범죄로 망했기 때문에 회개하면 회복된다는 소망은 백성들에게 회개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예레미야는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라고 했다(애3:57). 이런 하나님의 음성 속에 예레미야는 더욱 자신 있게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고 외쳤던 것이다. 결코 유다의 회복은 강대국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애4:17). 오직 회개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서 그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확신 속에 비록 예루살렘의 현재는 비참하고 고통스럽지만 끝내 회복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다(애5:14-15). 예레미야에게 있었던 이런 확신은 바벨론 포로시대가 끝난 후 메시아의 도래를 대망하는 스가랴 선지자에게서 보다 명확하게 볼 수 있다(슥7:4-6). 예레미야 선지자는 본문에서 하나님께 마지막 탄원을 올리고 있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대대에 이르나이다.”라고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불변하심에 근거한 미래의 구원을 호소한 것이다. 현실을 볼 때는 절망과 탄식뿐이지만 만물의 주관자이시며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 백성들을 볼 때는 소망이 보이지 않았지만 불변하신 하나님을 볼 때 그 가슴에 소망이 용솟음쳤던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정한 회복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과 은혜로만 가능함을 알려준다. 언약백성들이 스스로 영적인 의식이 있어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에 의해 회개함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정한 회개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속에 있음을 믿고 기도한 것이다. 따라서 심판을 받아 나라를 잃은 동족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한 것이다.

실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더라도 저들의 영적인 각성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셨을 때 가능했다(창35:1-15, 출33:1-23, 삼상7:3-17, 느8:1-18, 행2:1-13). 하나님만이 이스라엘 백성의 살길이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자신 있게 옛적 같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죄를 떠나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로 포로생활을 벗어 민족의 회복까지도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향한 뜨거운 사명을 감당한 눈물의 선지자였다. 여러 지역에 흩어진 유대인을 찾아다니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자’고 외친 선지자였다(렘42:22, 44:12,13).

신재철(초원교회 담임목사, 부산외대 겸임교수, 한국교회 송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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