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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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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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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기적

 

만물과 함께 생명이 존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창조에 의한 것임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뜻과 지혜를 가지고 만물과 함께 생명을 지으셨고, 그것들로 하여금 생명을 이어가게 하셨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는 생육하는 과정을 통해서 존재한다. 즉 식물로 예를 들자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때가 되면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남겨진 씨앗이나 뿌리가 다시 대를 이어서 생명으로 탄생하게 한다.

지난달 17일 옥상에서 기르는 청계 두 마리가 알을 품기 시작했다. 생명을 키우는데 유리한 계절에 포란을 해서 부화시킬 수 있도록 만드신 생체리듬에 따라서 녀석들은 둥지에 들어앉았다. 누가 가르쳐준 일이 없고, 당연히 훈련을 시키거나 포란을 강요한 적이 없다. 4개월 된 중작을 사다가 기르기 시작한 것이니 보고 배운 적도 없다. 하지만 날씨가 포근해지는 4월 어느 날 녀석들은 둥지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런데 유심히 살피지 못한 까닭에 녀석들이 초란을 시작한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이틀이나 지나서야 포란한다는 것을 알았다. 알을 더 넣어주지 못한 상태에서 녀석들이 낳은 것만 품기 시작한 것이다. 사흘 째 되는 날에야 직접 둥지를 살필 수 있었다. 분명히 포란을 하는 것이긴 한데 녀석들이 품고 있는 알이 몇 개인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살펴보기론 한 것이다. 늦었지만 품는 김에 몇 개 더 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4개의 알을 녀석들의 품속으로 밀어 넣었다.

녀석들이 포란을 시작한지 꼭 21일이 지났다. 아침부터 마음이 조급해졌다. 몇 번씩이나 계사(鷄舍)를 들여다보았다. 어미는 눈만 껌벅거릴 뿐 둥지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나를 경계하는 태도를 보인다. 문을 열고 자세히 보려고 하니 몸을 부풀리면서 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포란에 문제가 생길까 하여 조심스럽게 문을 여닫으면서 상태를 살폈다. 하지만 아직 병아리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침부터 몇 번이나 오르내렸지만 하루를 더 기다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서려는 순간 어디선가 ‘삐악삐악!’ 하는 병아리의 울음소리가 들였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다시 돌이켜서 계사의 문을 열었다. 귀를 기울여서 병아리 소리에 집중했다.

분명히 계사 안에서 들리는 병아리 소리였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병아리를 길러낼 수 있도록 준비해줘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우선 병아리가 나오면 먹을 수 있는 먹이와 물이 시급하게 필요했다. 문을 닫고 내려와서 병아리가 먹을 모이와 물그릇을 준비해서 다시 올라갔다. 하지만 병아리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분명히 삐악거리는 소리를 들었는데 녀석들은 숨을 죽인 채 어미의 품속을 파고들어 체온을 유지하면서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어미의 지극한 인내와 극한의 희생을 통해서 21일 동안 오직 체온만으로 병아리를 부화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다음날 아침 다시 지난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했다. 끝내는 계사 안으로 들어가서 포란중의 어미를 들어올렸다. 도대체 몇 개의 알을 품고 있는 것인지? 포란상태는 어떤지? 궁금한 것들을 살폈다. 그런데 어미를 드는 순간 가뿐했다. 삼주동안 먹이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만을 섭취하기 위해서 잠시 둥지를 미웠지 그 외에는 미동도 하지 않고 포란에만 집중했다. 알에서 병아리가 나올 때까지의 21일은 녀석들에게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인고의 시간이다. 체력의 한계를 경험하는 고통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녀석들은 해냈다. 포란을 시작한지 꼭 21일 만에 생명체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어미는 부화한 병아리를 데리고 둥지를 뛰쳐나왔다. 늦게 넣어준 알들은 포기했다. 하루나 이틀만 더 품으면 생명체가 되었을 텐데 인간의 욕심으로 늦게 넣어준 4개의 알은 결국 계란 안에서 자라던 생명체로 세상에는 나오지 못한 채 버림을 받았다. 그것은 전적으로 사람의 생각이고, 내 욕심으로 인해서 빚어진 일이다. 내심 아쉬웠고,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품었던 알은 모두 부화했다. 어미가 이소(離巢)하면서 새끼들을 불렀다. 이제 막 부화한 녀석들임에도 어미를 졸졸 따라다며 챙겨주는 것을 집어먹는다. 이제 막 부화한 병아리들인데도 문턱을 뛰어넘어 어미의 부름에 거침없이 따라나섰다. 어미가 부르는 대로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어미가 챙겨주는 것에 충실했다. 걸음이나 제대로 걸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무지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나름 병아리를 배려한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챙겼던 것들이 모두 허사였다. 어쩌면 어미들이 내 행동을 보면서 가소로이 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창조의 기적을 체험하는 순간이다. 자연이, 자연이 아닌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미는 그 기적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병아리들은 생명력의 우월함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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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2017.05.31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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