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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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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미5:1-9

언제나 하나님은 먼저 말씀하시고 그래도 못 알아듣고 순종하지 않으면 사건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먼저 선지자를 보내어 말씀하시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사건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기 전에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를 보냈습니다. 말씀을 전했습니다. 유다는 많은 선지자를 통해 망할 것이라고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바벨론이 쳐들어와 유다는 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1절에 미가 선지자를 통해 유다의 재판자가 뺨을 맞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있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1절에 재판자는 누구입니까? 유다의 왕을 말하는 것입니다. 왕이 뺨을 맞는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치욕입니다. 고종 때 일본자객이 경복궁을 쳐들어와서 명성왕후를 시해합니다. 고종은 피신하여 바들바들 떱니다. 비극이요, 치욕입니다. 이미 8년 전에 율곡 선생이 조선의 십만 양병설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동인 서인이 끝임 없이 대립되어 싸웠습니다. 율곡의 10만양병설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8년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조선은 비극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다나라에 비극이 있을 텐데 선지자는 계속 예언합니다. 그러나 유다나라에 왕들은 선지자의 말을 재수 없다고 예레미야를 가두고 때리고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왕은 바벨론에 망하고 도망치다가 붙들려 자녀들이 보는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왕은 두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묶여서 끌려가는 비극을 당합니다. 정확하게 예언은 이루어졌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유다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깁니다. 그들은 타락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선지자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낮추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높이는 자를 높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낮추는 자는 낮추시는 것입니다. 유다가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도 그들을 높 혔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은 다윗을 높 혔습니다. 유다가 망한 것은 죄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아서 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치욕을 겪은 것입니다.

3절 죄로 인해 고통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입니다. 모든 고통 중에 해산의 고통이 가장 크다고 말합니다. 고통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이제라도 회개하면 돌이키면 고통이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고통이 목적이 아닙니다. 돌아오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돌아오면 새롭게 해주고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는 고집을 부리다가 10번에 재앙을 받았습니다. 한번만에 순종하였더라면 다음의 그 다음 재앙은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지자는 미리 앞에 있을 고통을 예언하는 목적이 돌아오게 하기위한 목적입니다. 회개를 하면 모든 것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이백성이 하나님 앞에 나오면 회개하면 이 나라를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제 2절에 근본적으로 유다를 다스릴자가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다스릴자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생명의 주인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자연을 다스리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께로 오기만하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개입하시면 6절에 그분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 노예살이 할 때 거기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바벨론나라에서 70년 노예살이 하다가도 그분이 개입하시니 거기서 해방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개입하시면 어떤 흉악의 문제도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평강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평안이 없다면 진정한 복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진정으로 다스릴왕은 평강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5절에 진정한 평화 샬롬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미5:1-9

언제나 하나님은 먼저 말씀하시고 그래도 못 알아듣고 순종하지 않으면 사건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먼저 선지자를 보내어 말씀하시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사건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기 전에 하나님은 많은 선지자를 보냈습니다. 말씀을 전했습니다. 유다는 많은 선지자를 통해 망할 것이라고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바벨론이 쳐들어와 유다는 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1절에 미가 선지자를 통해 유다의 재판자가 뺨을 맞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있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1절에 재판자는 누구입니까? 유다의 왕을 말하는 것입니다. 왕이 뺨을 맞는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치욕입니다. 고종 때 일본자객이 경복궁을 쳐들어와서 명성왕후를 시해합니다. 고종은 피신하여 바들바들 떱니다. 비극이요, 치욕입니다. 이미 8년 전에 율곡 선생이 조선의 십만 양병설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동인 서인이 끝임 없이 대립되어 싸웠습니다. 율곡의 10만양병설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8년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조선은 비극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다나라에 비극이 있을 텐데 선지자는 계속 예언합니다. 그러나 유다나라에 왕들은 선지자의 말을 재수 없다고 예레미야를 가두고 때리고 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왕은 바벨론에 망하고 도망치다가 붙들려 자녀들이 보는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왕은 두 눈이 뽑혀 바벨론으로 묶여서 끌려가는 비극을 당합니다. 정확하게 예언은 이루어졌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유다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깁니다. 그들은 타락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선지자의 말을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낮추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높이는 자를 높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낮추는 자는 낮추시는 것입니다. 유다가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도 그들을 높 혔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은 다윗을 높 혔습니다. 유다가 망한 것은 죄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아서 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치욕을 겪은 것입니다.

3절 죄로 인해 고통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입니다. 모든 고통 중에 해산의 고통이 가장 크다고 말합니다. 고통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이제라도 회개하면 돌이키면 고통이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고통이 목적이 아닙니다. 돌아오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돌아오면 새롭게 해주고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는 고집을 부리다가 10번에 재앙을 받았습니다. 한번만에 순종하였더라면 다음의 그 다음 재앙은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지자는 미리 앞에 있을 고통을 예언하는 목적이 돌아오게 하기위한 목적입니다. 회개를 하면 모든 것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이백성이 하나님 앞에 나오면 회개하면 이 나라를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이제 2절에 근본적으로 유다를 다스릴자가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다스릴자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생명의 주인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자연을 다스리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께로 오기만하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개입하시면 6절에 그분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 노예살이 할 때 거기서 건져내는 것입니다. 바벨론나라에서 70년 노예살이 하다가도 그분이 개입하시니 거기서 해방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개입하시면 어떤 흉악의 문제도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평강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평안이 없다면 진정한 복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진정으로 다스릴왕은 평강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5절에 진정한 평화 샬롬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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