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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행복한 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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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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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행복한 봄이어야 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차라리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다/ 망각의 눈(雪)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으니…”

T. S. 엘리엇은 1922년에 발표된 자신의 장편 서사시 ‘황무지’에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 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암울한 시기에 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전쟁은 그저 영웅의 무용담이었으나 잔인한 가혹행위와 대량살육, 문명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의 폐허로 바뀐 세상, 그 무모함과 잔혹함으로 인류는 파산 선고를 받은 상황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다시 꽃이 피고 새로운 문명을 시작하려는 모습을 보며 시인은 그 꽃이 마치 시체 위에 핀 것과 같다는 느낌이었던 모양이다. 생명의 약동이 오히려 과거의 아픔과 죽음을 더 생각나게 했기에 그 큰 괴로움을 역설적으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이 유명한 명구가 꼭 대한민국의 금년 4월에 대한 표현인 것 같아 씁쓸하다. 전운이 감돈 4월의 한반도, 한 달 내내 미국과 북한의 강 대 강 대치는 하루하루를 조마조마하게 했다. 미국은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며 전략무기의 전진배치를 통해 대북 군사압박을 강화했고, 시리아 공군기지 공습과 아프가니스탄의 IS 동굴 근거지에 최고성능의 GBU-43 폭탄 투하로 북한에 섬뜩한 경고장을 보냈다. 북한도 물러서지 않고 “전면전도 불사한다”며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로 맞대응했다. 다행히 실패였지만 또 다시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면 한반도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 될 수도 있었다.

선제타격은 전면전과 대량살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에 우리는 군사행동을 바라지 않았지만 트럼프가 예측불허의 지도자라 많이 불안했다. 더욱이 제임스 놀트 뉴욕 세계정책연구소(World Policy Institute) 선임연구원이 네 가지 이유를 들며 트럼프의 북한과의 전쟁 감행 가능성을 예측함으로써 우리의 4월을 더욱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는 국내 정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카드로 북한을 희생양(scapegoat) 삼을 수 있다는 점과 미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극약처방으로 ‘전쟁 특수’를 고려할 수도 있다는 점, 그리고 이라크나 시리아에 비해 군사적으로 김정은 체제 궤멸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과 천문학적 비용을 지출해야 했던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와는 달리 북한과의 전쟁 비용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었다.

긴장감이 감돈 위기의 4월, 여기에 참사 3년 만에야 인양된 세월호가 국민의 마음을 더 우울하게 했다. 아직 아홉 명의 미수습자를 찾지 못한 채 4월의 끝자락까지 왔다. 그런데도 개나리와 목련, 진달래와 벚꽃이 여느 봄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한반도의 4월을 수놓았으니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란 표현과 ‘차라리 겨울은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다’는 표현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우리 마음에 꽃씨를 뿌리고 초록의 붓질로 밑그림을 그리지도 않고 펼쳐진 화사한 계절이었기에 금년 4월은 전통적인 우리의 춘심(春心)을 제대로 자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늦었지만 계절의 여왕 5월에는 고혹한 꽃향기를 따라 문밖을 나서 절정의 봄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 장미, 철쭉이 피며 자연의 봄 페스티벌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만약 안보 불안이 계속된다면 한반도의 5월은 힘겨운 여름 분위기가 되고 말 것이다. 봄도 없이 여름(?) 이건 아니다. 만일 봄 없이 여름을 산다면 가을의 행복도 없을 수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 봄의 수고 없이 가을의 결실만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푸른 5월, 교회는 촛불과 태극기로 봄을 불렀던 일반 국민들과는 좀 다른 모습으로 한반도의 5월을 행복한 봄이 되게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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