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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vs 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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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32

 

선지자 vs 죄인

요9:8-23

 

맹인이 눈을 뜬 것을 본 이웃사람들이 너무 놀라서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를 묻자 맹인이었던 이 사람은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뜨게 해주었다”(11절)고 대답한다. 이는 5장의 38년 된 병자가 고침 받고난 후 누가 고쳐주었는지 “모른다”(5:13)고 했던 대답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9장에서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 부모에게 물었던 것(19절)을 포함하여 네 번이나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를 질문을 하는데(10, 15, 26절) 맹인이었던 이 사람은 점점 더 발전적인 자신의 신앙고백과도 같은 대답을 한다. 그들은 ‘어떻게’보다는 ‘누가’를 물었어야 했다.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눈을 뜨게 해주었다고 대답하자 날 때부터 맹인이 눈을 뜨는 전무후무한 기적을 본 이웃사람들은 이 사람을 바리새인들에게로 데려갔다. 바리새인들은 축하한다는 멘트 한 마디 없이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를 심문했다. 맹인이었던 이 사람은 예수께서 하셨던 일을 더도 덜도 없이 사실 그대로 답변했다(15절).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한 것을 보면 메시야인 것 같지만(소수) ① 진흙을 이긴 행위는 안식일에 행한 노동이고, ② 병을 고친 행위와 ③ 눈에 침을 뱉은 행위는 규례 위반이라며 ‘예수는 죄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다수).

그리고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겠느냐?”(17절)고 물었다. 5장의 38년 된 병자가 부인했던 것처럼 맹인이었던 이 사람이 부인하면 예수께는 치명적인 타격이 되고 매장당하는 분위기가 될 것을 기대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이 사람은 죄인 취급을 당하는 예수님을 ’그 분은 선지자입니다‘(He is a prophet)라고 대답했다. 이는 그들의 기대를 묵살시키는 대답이었고, 인생을 건 멋진 신앙고백이었다.

첫 번째 계획이 소기의 목적 달성 없이 무산되자 바리새인들은 그의 부모를 불렀다. 부모는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대 사람들이 이미 결의한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22절). 그래서 “① 이 사람이 너희 아들이냐? ② 정말 맹인으로 났느냐? ③ 아들이 지금 어떻게 보느냐?”를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①번과 ②번은 둘 다 사실이라고 대답했지만 ③번에 대해서는 슬쩍 발을 뺐다. “지금 어떻게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21절). 마치 남의 일처럼 말했다. 아들이 눈 뜨게 된 것이 하나도 기쁘지 않다는 투다. 출교가 두려웠을 수는 있지만 아들이 막무가내로 예수님을 증거하자 아예 아들을 버리기로 작정한 사람들처럼 대답하는 그들은 비겁한 부모였다.

물론 이해는 할 만한 상황이다. 회당 중심이자 대가족 중심인 유대사회, 예루살렘에만 122개 회당이 있고, 개인의 삶은 자기가 속한 회당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그러므로 출교는 팔레스타인은 물론 디아스포라 세계에까지 모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철저히 고립되는 치명적인 징계다. 만일 30일만 출교당해도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나가는 일까지 막힌다. 최고의 불명예요 아예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꼴이다. 그러나 설령 출교를 당하더라도 그들은 그 아들의 부모답게 행동했어야 한다.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려던 바리새인들이 얻어낸 것이라고는 기적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밖에 없었다. 두 번째 계획마저 무산되자 그들은 맹인이었던 그 사람을 또다시 부른다. 모리스(Leon Morris)의 말대로 그들은 아예 ‘보려고 하지 않는 눈 먼 사람들’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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