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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회복된 낙원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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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익환 목사 - 제자감리교회

“과연 회복된 낙원이십니까?”

 

롬 7:21-2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둘째 아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담과 대조(對照)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대조(對照)를 하였습니까?

 

창세기의 아담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마귀의 유혹을 따라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낙원에서 추방당한 그들은 우리 인간에게 사망과 저주를 남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罪)와 죄인(罪人) 역사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한 마디로 인간(人間)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희망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本文)에서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한 것도 바로 이러한 죄(罪)의 문제로 말미암은 인간 존재(存在)의 영적인 딜레마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전 상태가 아니라 그 이후(以後)의 딜레마를 뜻합니다. 바울은 이미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큰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이미 지난 날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낙원, 그 추방당했던 낙원을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회복시켜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그는 위대한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게 이 영적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는 분명히 논리(論理) 상으로 지금 낙원(樂園)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善惡果)를 먹지 않고 생명과(生命果), 즉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먹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선악과가 동산 중앙에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동서남북을 오고가면서 항상 눈에서 벗어나지 않는 죄악이 만연한 현실을 뜻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여러분이 보고, 듣고 쉽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그 피할 수 없는 이 세상환경을 뜻합니다.

지금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의 모습은 타락을 부추기는 세상 문화를 뜻합니다. 정말로 먹음직도, 보암 직도, 지혜롭게 할 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지금의 이 지구환경은 점점 죽어가고 있습니다. 다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미 아시겠지만 수많은 유독성 쓰레기, 폐기물들을 땅에 묻으면 그것이 물속으로 스며들어 사람들을 역습(逆襲)합니다.

 

지금 우리는 산소의 재생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공기가 오염되어 황폐해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다시 대기의 온난화를 만들고 인류의 멸망과 재앙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인간의 모든 면역체계를 파괴하는 방사능과 각종 바이러스의 노출과 그 출현에 인류는 계속하여 또 다른 긴장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러한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회복된 낙원(樂園), 다 이루었다! 고 하셨던 그 낙원(樂園)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논리적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고백한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노라! 가 바로 낙원(樂園)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의 상태(常態)에서 출발합니다. 상태로서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그 낙원(樂園)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추방당했던 현실에서 살고 있는가? 이것은 여러분의 확고한 믿음의 정체성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환경(環境)이 아니라 내 마음, 즉 내 믿음의 상태가 결정(決定)하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의 결단과 결정 가운데 사는 것이 바로 지금의 현실적 낙원(樂園)입니다.

 

 

 

배익환 목사 - 제자감리교회

“과연 회복된 낙원이십니까?”

 

롬 7:21-2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둘째 아담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담과 대조(對照)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대조(對照)를 하였습니까?

 

창세기의 아담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마귀의 유혹을 따라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낙원에서 추방당한 그들은 우리 인간에게 사망과 저주를 남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罪)와 죄인(罪人) 역사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한 마디로 인간(人間)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희망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本文)에서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한 것도 바로 이러한 죄(罪)의 문제로 말미암은 인간 존재(存在)의 영적인 딜레마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전 상태가 아니라 그 이후(以後)의 딜레마를 뜻합니다. 바울은 이미 둘째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큰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이미 지난 날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낙원, 그 추방당했던 낙원을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회복시켜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그는 위대한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게 이 영적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는 분명히 논리(論理) 상으로 지금 낙원(樂園)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善惡果)를 먹지 않고 생명과(生命果), 즉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먹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선악과가 동산 중앙에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동서남북을 오고가면서 항상 눈에서 벗어나지 않는 죄악이 만연한 현실을 뜻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여러분이 보고, 듣고 쉽게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그 피할 수 없는 이 세상환경을 뜻합니다.

지금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의 모습은 타락을 부추기는 세상 문화를 뜻합니다. 정말로 먹음직도, 보암 직도, 지혜롭게 할 만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지금의 이 지구환경은 점점 죽어가고 있습니다. 다 말씀드리지 않아도 이미 아시겠지만 수많은 유독성 쓰레기, 폐기물들을 땅에 묻으면 그것이 물속으로 스며들어 사람들을 역습(逆襲)합니다.

 

지금 우리는 산소의 재생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공기가 오염되어 황폐해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다시 대기의 온난화를 만들고 인류의 멸망과 재앙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인간의 모든 면역체계를 파괴하는 방사능과 각종 바이러스의 노출과 그 출현에 인류는 계속하여 또 다른 긴장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러한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회복된 낙원(樂園), 다 이루었다! 고 하셨던 그 낙원(樂園)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논리적으로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고백한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노라! 가 바로 낙원(樂園)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의 상태(常態)에서 출발합니다. 상태로서의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그 낙원(樂園)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추방당했던 현실에서 살고 있는가? 이것은 여러분의 확고한 믿음의 정체성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환경(環境)이 아니라 내 마음, 즉 내 믿음의 상태가 결정(決定)하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의 결단과 결정 가운데 사는 것이 바로 지금의 현실적 낙원(樂園)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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