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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지혜 (욥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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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지혜 (욥42:7)

-그리스의 고난에 대한 지혜이다.

 

구약성경에 욥기가 없다면 신약 성경의 존재 자체가 위태할 정도로 강렬한 지혜 세 가지를 욥기서가 가지고 있다.

첫째,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지혜이다. 욥기를 오해하는 것은 욥의 주장에서 비롯된다. 욥기 전체에서 욥은 자신을 의인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의인이라 인정하셨다(욥1:1,8). 욥은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하고 친구들은 회개를 요구한다. 욥은 의인의 고난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과 직접 대면할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고난’에 대한 원인을 단 한 마디로 설명하지 않으신다. 대신에 욥에게 ‘저 해와 달, 바다와 땅을 누가 창조했으며, 큰 짐승, 작은 곤충, 들의 작은 꽃과 하늘의 별을 누가 만들었는지’를 묻는다. 이 질문에 욥은 비로소 회개를 한다. 그렇다. 욥은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에 회개한 것이 아니라 전 우주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못했기에 회개했다. 욥이 고난을 받은 것은 전능자의 뜻이다. 의인의 고난은 창조주의 의지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이에 순종하는 것이 최후의 순종이다. 욥은 바로 이 최후의 순종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회개를 한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지혜이다. 욥의 주장, 곧 자신이 의인이라는 주장은 옳은 것일까? 회개를 요구하던 친구들이 틀린 것인가? 그렇다. 친구들이 틀렸다. 욥은 의인이었고, 단지 전능자의 마지막 뜻에 대하여 지혜가 없기 때문에 최후의 순종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친구들은 처음부터 틀렸다. 친구들이 틀린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 바로 하나님께서 그들이 틀렸다고 말씀한다(욥42:7).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욥의 친구들에게 진노하셨다. 의인의 고난을 의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죄인으로 취급한 것에 대하여 진노하셨다. 그리고 욥의 친구들에 대해서 용서의 방법으로 욥의 중재를 말한다(욥42:8-10).욥은 친구들을 위해서 빌었다(욥42:10). 여기서 ‘빌다’는 히브리어 ‘파랄’로 ‘기도하다’, ‘화해시키다’, ‘중재하다’는 뜻이다. 곧 친구들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고 화해시켰다. 그리고 이 사역을 감당한 욥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갑절의 축복을 주셨다(욥42:10). 욥은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요일2:1)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전15:3). 의로우신 분이 고난을 받았다. 욥은 이것이 전능자의 뜻이다. 창조주의 계획이라고 말한다. 욥과 달리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빌2:8). 욥은 마지막에 순종하지 못했지만 그리스도는 끝까지 순종하셨다. 만일 욥기가 없다면,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의 죽음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라고 해도 답을 주지 못할 것이다.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욥기는 의인도 고난을 받는다. 오직 전능자의 뜻 안에서 고난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중보자 욥이 갑절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주님께서는 순종으로 우리에게 주실 영광을 얻었다.

세째, 믿는 자의 고난과 순종의 축복이란 원칙은 아직도 유지된다. 그리스도의 고난 이후에 초대교회는 많은 고난을 받는다. 믿는 자의 고난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믿음과 영생, 영광만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롬8:17). 이것은 전능자의 뜻이라는 것도 분명히 알고 있다. 바울은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한다(딤후1:8).

욥기의 지혜에 따르면, 의인도 고난을 받는다. 그러니 하나님께 순종하여도 고난을 받을 수 있다. 욥의 지혜는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표하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고난 받는 교회를 이차적으로 예표한다. 그렇다고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고난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욥이 고난 받는 것 곧 의인이 고난 받음도 전능자의 뜻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들에게 고난과 시련이 있다면, “사람이 젊었을 때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앉아서 잠잠할 것은 주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애3:27-28). 말씀을 상고하면서, 순종하고 잠잠히 그 고난 가운데 원망하는 죄를 범하지 마시기를 소원한다. 분명 최후의 순종에는 갑절의 축복이 있다. 우리들에게 평화와 즐거움이 있다면,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라는 말씀도 기억해야 한다(약4:9).

욥기의 지혜를 배우자. 전능자의 뜻이 있음을 기억하자. 그리스도는 의로우셨으나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았다. 이것을 예표 하는 것이 욥기이다. 오직 고난을 순종으로 견디며,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는 지혜로, 그리스도의 고난과(벧전4:13) 영광에(벧전5:1) 참여하여야 한다. 욥은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신재철(초원교회 담임목사, 부산외대 겸임교수, 한국교회 송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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