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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호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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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호 연결>

 

배본철 교수(성결대학교 신학대학장, 성령의 삶 코스 대표) 고처주세요

방언에 대한 긍정적 인정론(2)

 

바울이 모든 사람이 방언의 은사를 경험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 구절로 흔히 사용되어져 온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고전 12:30)에 대한 김 교수의 해석은, 이 구절이 문맥상으로 볼 때 “모두가 방언의 은사를 경험하겠는가?”라는 말이 아니라, 예배 가운데 행해지는 방언통역을 위한 방언으로서 “모두가 방언을 하는 역할을 수행하겠는가?”라는 뜻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즉 어떤 사람은 방언을 하고, 다른 사람은 그것을 통역하고, 또 다른 사람은 예언을 하는 등 예배 가운데 모든 사람이 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각자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입니다(고전 14:27-33).

 

 

요약해서 본다면 김 교수는 바울의 방언에 대한 입장은 방언이 성령의 은사의 하나로서 하나님과 영으로 소통하는 은사(기도, 찬양, 감사, 축복)로서 소중한 것이며, 방언 자체가 낮은 단계의 은사로 본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예배 중에 방언이 통역 없이 사용된다면 이것은 공동체에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예배 가운데 무질서하게 사용하지 말고 통역이 있을 때 공동체의 세움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이러한 김 교수님의 방언에 대한 성서해석은 다양한 해석학적 기법을 까다롭게 적용시켜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논증하려기보다는, 성서의 문맥을 따라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있는 그대로 해설해 나갔다고 봅니다. 그러면서도 그 동안 방언에 대한 논쟁의 근거로 사용되던 구절들을 일일이 들어 자신의 논증과 답변을 힘 있게 제시하기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김 교수님은 방언에 대한 해석상 입장의 세 범주로서 적극적 부정론, 소극적 인정론, 긍정적 인정론을 소개하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흥미로운 것은 한국교회사 속에도 이와 흡사한 세 범주의 방언관이 존재해 왔다는 점입니다. 첫째는 방언에 대한 긍정적 인정론으로서 방언을 성령세례의 초기적 증거로서 보는 전통 오순절주의를 들 수 있으며, 적극적 부정론으로서 정통 개혁주의신학과 웨슬리안 계통으로부터의 방언에 대한 반발, 그리고 소극적 인정론으로서 성령의 은사 중 하나로서의 방언에 대한 인정의 경향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사실 방언 문제는 오순절교회 뿐 아니라 여타의 교단들에게도 신학적 과제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현대교회에서 방언하는 이들은 단지 오순절교회가 아니더라도 어떤 교단의 교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은 신학적으로는 분명히 방언이나 예언 등의 초자연적 은사의 종료를 말하고 있으나, 목회 현장에서는 이를 금지시키기 힘든 상황이 사실입니다. 또 대부분의 웨슬리안-성결 그룹의 교회들은 신학적으로 방언에 대한 거부감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나, 목회적 현실은 대부분 이와는 반대되는 정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동안 각 교단 교리적 노선에서 취해 온 입장과 목회적 현실과는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앞으로 현장을 위한 신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방언 문제를 둘러싼 각 교단 교리와 현 상황 사이의 신학적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봅니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김동수 교수의 ‘방언론’은 한국교회 정통 개혁주의신학에서 펼쳐 온 방언에 대한 적극적 부정론에 대한 반동으로서, 그 동안 이러한 부정론에 필적할만한 학문적인 시도가 미미한 가운데 나타난 하나의 용기 있는 변증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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