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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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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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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다른 복음서들은 예수께서 안나스 앞에 끌려간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요한도 이미 그 때에 가야바가 대제사장이었음을 밝혔다(13절). 그렇다면 안나스가 심문(審問)하는 것은 불법(不法)이다. 그래서 주석가 중 일부는 이 심문이 실제로는 안나스가 아니라 가야바가 집행한 심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장 구조가 주는 전반적인 인상은 예수께서 안나스에게 끌려가셨고(13절), 후에 가야바에게 압송(押送)되기까지(24절) 안나스의 집에 계셨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전히 대제사장으로 불렸던 실세 안나스는 산헤드린에 제출할 증거를 찾아 빌라도를 압박하여 유월절이 시작되는 아침 6시 전에 판결과 선고를 끝내고 십자가 처형까지 몰아붙이기 위해 새벽 3시에 심문을 강행했다. 산헤드린이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사형 언도를 내리게 하려면 한치의 여유도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모리스는 유대인의 법률이 피의자를 보호하기 위해 증인들에 의해 확증되어야만 유죄 판결을 할 수 있게 했기에 안나스가 자신의 무죄를 변명하고 증명할 의무가 없는 예수님을 심문한 것은 위법(違法)이라고 했다. J.R.힐도 유대인의 법에는 유죄의 증거가 기소에 의해 제출되기 전에는 죄수에게 자백을 유도하는 심문은 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고 했다.

안나스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교훈에 대해 물었다. 제자들이 누구였는지 보다는 그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또 앞으로 무슨 일을 할 것인지를 물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침묵하며 진술을 거부하셨다. 절차의 하자를 아셨기 때문이며 끝까지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리나 예수님은 “내가 드러내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내가) 항상 가르쳤고…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라고 자신을 강조하는 대답으로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며 반격하셨다. 원칙대로 증거를 내놓으라는 뜻이다. 이에 대제사장의 호위병 하나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라며 예수님을 때렸는데(22절, ‘라피스마’(ra'pisma, 손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때렸다는 뜻) 오만한 태도가 물씬 풍기는 모욕적인 이 돌발행동 역시 위법이다. 예수님은 그의 이 난폭한 행위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며 만일 자신의 발언에 잘못이 있다면 누구든지 증언하라고 하셨다(23절).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요한복음에서는 일관되게 ‘증거’가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죄수로서의 혐의점을 찾지 못한 안나스는 가야바에게 예수님을 ‘결박한 그대로’ 압송했다. 묶인 상태로 심문을 당하셨는지 심문 때 풀렸다가 다시 결박되셨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예수님은 같은 뜰을 쓴 것으로 보이는 가야바가 사는 곳으로 끌려가셨다.

한편 이 무렵 불을 쬐고 있던 베드로는 연이어 예수님을 부인했다. 질문자에 대해 마태는 ‘다른 여종’(마26:71), 마가는 첫 질문자와 같은 인물로 추정케 하는 ‘여종’(막14:69), 누가는 한 남자로 볼 수 있는 ‘다른 사람’(눅22:58)이라고 했지만 요한은 ‘사람들’이라 했다. 정황상 숯불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물으니 또 다른 사람이 다시 물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질문은 부정적인 답변을 기대하는 질문, 베드로는 또 “나는 아니라”(I am not)고 했다. 그리고 누가가 한 시간쯤 있다가 물었다는 세 번째 질문은 긍정의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 마태는 말투가 그렇다며 사람들이 물었다고 했고, 요한은 질문자가 ‘말고(Malchus)의 친척’이라 했다. 말고라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에게 귀가 잘렸던 사람이다. 여하튼 혼비백산케 하는 질문에 베드로는 일언지하에 예수를 모른다고 했다. 마태와 마가는 저주와 맹세를 곁들인 강력한 부인이었다고 했고(막14:17, 마26:73), 누가는 그 순간 예수께서 베드로를 보시고 베드로는 통곡했다고 했으며, 요한은 예수님의 예언대로(13:32-38) “닭이 울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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