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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기도는 유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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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언 기도는 유익한가?

성령사역의 본질(35)

 

배 본 철(성결대학교 신학대학장, 성령의 삶 코스 대표)

 

어떤 분들은 제게 다짜고짜로 “목사님도 방언을 하시나요?” 하고 묻기도 합니다. 그리고 만일 방언을 하신다면 목사님이 방언하실 때 경험하는 실제적인 유익이 뭔지 좀 말씀해 달라는 겁니다. 사실 저도 방언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방언주의자 또는 방언 옹호론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속에서 방언을 하고 싶은 감동이 일어날 때만 합니다. 그럴 때 방언을 하게 되면 확실한 유익을 얻게 되죠. 성경 고린도전서 14장 전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방언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방언은 성령의 감동으로 인간의 영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고전 14: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영이 성령의 감동을 따라 기도하게 되는데, 그럴 때 이해할 수 없는 음절이나 반복되는 단어들이 우리의 구강구조를 통해 소리로 발성되죠. 그러니까 방언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일상생활 속에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 그것은 우리 내면속의 은밀한 영적 비밀을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고, 그러니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지요.

그러면 누가 방언을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방언을 하게 되는 것은 성령의 충만 체험이나 성령의 감동과 관계있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성령을 충만히 받을 때 그 벅찬 감동 속에서 입으로 방언이 터져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지 일시적인 사건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한번 방언을 경험하게 되면 그 후에도 성령의 감동이 있을 때마다 방언을 할 수 있게 되지요. 크리스천들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성령께서 그들에게 방언의 감동을 주실 때는 당연히 방언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저의 경우에 있어서는 방언이라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건강하게 유지함에 있어서 매우 요긴하다고 봅니다. 방언 하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방언을 깊이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영혼의 시름이나 무거운 짐들이 벗어지고 그 대신 상쾌하고 평안한 영혼을 되찾게 된다고 하기 때문이죠. 저 역시 그런 경험을 자주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요즘 같이 복잡하고 문제 많은 세상을 살아갈 때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이겨냄에 있어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일은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겠죠.

실제로 성경은 방언이 방언 말하는 자의 속사람에 큰 힘을 준다고 말합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고전 14:4). 여기서 자기의 덕을 세운다는 말은 자기의 영혼을 강화시킨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4:18)고 하였으며, 더 나아가서는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고전 14:39). 방언을 사모하는 분이 방언할 수 있도록 제가 기도로서 도와 준 한 예를 소개하겠습니다.

필리핀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어떤 필리핀 자매가 간절한 눈빛으로 내게 다가와 자신이 방언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자매가 이미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에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영혼 속에서 터져 나올 듯한 주님을 향한 사랑과 갈망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그 자매가 곧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그래서 그 자매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고는 지금 즉시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다음 순간 그 자매는 갑자기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더니 아름다운 사랑을 주님께 고백하는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달 어느 한 필리핀 교회에서도 설교를 하고 난 후 통성기도의 시간으로 들어갔을 때, 거기 모인 대다수의 필리핀 청년들이 울며 회개의 기도를 하다가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성령세례 받으면 방언 말해야 한다는 주장은 하지 않지만, 방언 말하기를 사모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방언을 말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방언의 유익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위적이거나 억지로 따라 하는 식으로 방언 말하기를 유도하는 일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입으로 방언 비슷한 소리를 낸다고 해서 다 방언은 아니거든요. 참 방언은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고, 또 그런 감동 속에서 말할 때 영혼에 유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적 신앙의 핵심은 성령의 역사의 결정적인 요소가 방언, 신유, 입신과 같은 은사 체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 삶의 변화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면적 성결이라는 핵심은 기독교 이천 년 역사상 깊은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이며, 적어도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의 복음적 성령론의 변함없는 기반이기도 한 것입니다.

은사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은사주의나 무분별한 은사 사용은 언제나 신학적 비판의 대상이 되어온 것일 뿐 아니라 성령론의 핵심 사항이라기보다는 부차적 사항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 말씀의 정신 안에서 분별력을 날카롭게 하여 방언 등의 은사 사용의 잣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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