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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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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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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17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 한다

요 5:10-18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는 치유의 말씀에 38년 된 병자가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간 것이 시빗거리가 됐다. 이 날은 안식일, 자리를 들고 일어난 것이 유대인의 39가지 안식일 법 중 “물건을 들지 말 것”이라는 규정을 범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을 공격할 절호의 찬스였다. 사실 병자가 자기 자리를 들고 간 것이 일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는 분명하지도 않지만 그들은 율법을 들이대며 옳지 않은 일이라 결론짓고 그렇게 시킨 사람이 누구냐고 추궁했다. 그들은 38년이나 병으로 고생하던 불구자가 고침을 받은 것 따위에는 최소한의 관심조차 없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때 고침 받은 사람의 태도다. 그는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13절), 예수님을 모른다고 대답했다. 물이 동할 때 연못에 들어가길 기대했던 자신을 연못에 넣어준 정도도 아니고 물에 들어갈 필요도 없이 ‘완전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고도 예수님을 향해 “당신은 누구십니까?” 묻기는커녕 예수님께 일체의 관심도 없었다. 오로지 자기신상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고쳐주신 분이 누구든 전혀 관심이 없다는 태도였다. 그 뿐인가? 만일 안식일을 범했다면 그 책임은 누군지는 몰라도 그 사람에게 있다는 식이다. “내가 들고 간 게 아니라 들고 가라고 했어요” 그런 태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다시 그를 만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 예수님은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여기서는 “sin no more”보다는 “sin no longer”란 뜻, Goodspeed는 ‘죄를 포기하라’고 번역했다)고 하셨다. 그의 병이 죄 때문이었는데 계속 죄짓고 있다는 말씀이다. 다른 죄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일단 하나님이 안중에 없는 죄인이다.

그럼에도 불쌍히 여겨 고쳐주고 또 기회를 주셨건만 이 사람은 “생색내시나?”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는 예수님의 경고는 그의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는 거저 38년을 지긋지긋하게 지옥처럼 살다 이제 금방 고침을 받았는데 바로 안식일을 범한 죄인으로 찍힐 수는 없다는 태도였다. 그래서 기회를 주신 예수님께 땡큐는 고사하고 자신을 고친 이는 예수라고 고발한다(15절). D.A.카슨(Carson)은 이 사람의 이 행동을 ‘반역이라기보다는 둔감함의 죄’라 했고, J.R.힐은 안식일을 범한 것이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죄이기에 ‘배반이라기보다는 신변위협을 느낀 책임 전가’라 했지만 요한복음 9장에 등장하는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중증시각장애인의 경우와 너무 비교된다. 약삭빠른 것 같으나 어리석고 비겁하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경험하고도 스스로 구원의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성경은 이것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했다고 한다(16절). 그러나 박해하는 그들 앞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 한다”고 하시며 자신과 하나님을 동등(同等)으로 말씀하셨다.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 그들은 더욱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다(18절). 물론 예상치 못한 일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마음을 훤히 아시는 주님은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의도적으로 계속 범하시더니 이제는 아예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하신다.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선포한 셈이다. 이는 하나님을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하나님을 모독한 ‘참람죄’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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