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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을 미리 사는 봉쇄 수도원...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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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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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호 목사 갈보리교회 담임목사

봉쇄 수도원이란?

어느 날 기도 중에 벼락같은 생각이 소름끼치게 지나갔습니다.

“봉쇄 수도원을 세우라.”

나는 거절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병 없이 건강하다. 건강이 걸림돌이 되어 할 일을 방해받아 못 한 적이 없다. 오라는 데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다. 왜 하필이면 봉쇄 수도원인가?”

내가 하나님 속을 썩일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하나님이 내 속을 썩일 때였습니다. 나는 6개월 정도 이 사명과 씨름하다가 항복하였습니다. 봉쇄 수도원을 세우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선포와 반응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강대상에서 선포하였습니다. 2014년 11월 첫 주였습니다.

“저는 이제 봉쇄 수도원을 세우고 그 안에서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선언하고 나자 제1 반대자는 아내였습니다.

“여보! 나는 그렇게 못 살아요.” 나는 아내 눈을 쳐다보며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방법은 하나뿐이지요. 하나님은 들어가서 나오지 말라고 하고 당신은 안 들어온다고 하니 이혼 외에 방법이 없네요.” 아내가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살고 어떻게 이혼해요? 같이 들어가서 나는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주 수도원에서, 당신은 나오지 않는 봉쇄 수도원에서 살아요.” 우리는 그렇게 타협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은 교인들이 반대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들렸습니다.

“천주교로 가는 것이냐?” “자기 은퇴 준비가 아니냐?”

그러나 밑바닥에 깔린 것은 헌금이 부담스럽다는 것도 들어 있음을 간파하였습니다. 수도원을 세우려면 수백만 원, 수천 만 원씩 헌금하여야 합니다.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부담이 됩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안

나는 가진 돈이 없었습니다. 나는 갈보리 교회가 내 아들같이 귀하였습니다. 내가 개척한 교회라 애정은 더 깊었습니다. 다 쏟아 부었습니다. 집을 세 번 바쳤습니다. 가진 모든 것을 다 드리고 교회 8층에 침대하나 책상하나 놓고 나니 공간이 없는 방에서 아내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들에게 제안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시골 집 하나 사십시다. 물론 교회 재산으로입니다. 그 곳에서 수도원을 개척하겠습니다. 크게 늘려도 모두 교회 재산입니다. 나는 무소유로 죽겠습니다. 이것이 수도사의 원칙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무응답이었습니다. 긍정도 부정도 없었습니다. 퇴직하고 근근이 살아가는 장로님들이 많아서 긍적적인 대답을 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모두 나와 함께 30년을 같이 걸어 온 가족 같은 장로님들 심정을 내가 모를 리 없었습니다. 30년 동안 목회 잘 하고 마지막에 수도원 건축으로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집트의 수도원들은 거의 동굴이나 빈 무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누가 헌금을 많이 하여 수도원이 커지면 등지고 더 깊은 사막으로 떠나는 것이 수도사들의 삶인 것을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네게 주노니...”

이것이 수도사의 삶입니다.

“내게 은과 금은 많거니와 내게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네게 줄 수 없노니...”

이것은 수도사의 영성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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