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목회

목회영성이야기 분류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다

작성자 정보

  • 연합기독뉴스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이희우 목사 /신기중앙침례교회

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46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다

요13:1-11

 

‘사랑은 의지적 행동이다.’ 에릭 프롬(Erich Fromm)이 자신의 저서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내린 사랑의 정의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사랑은 느낌(감정)인 듯하나 느낌이 사랑의 전부는 아니다. 의지적인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제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제외한 제자들을 상대로 의지적 행동이라는 진정한 사랑으로 마지막 강론을 시작하신다. 때와 장소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유월절 엿새 전’이라 했다. 일정한 시간을 표시하는 요한의 전형적인 표현방법이 여기서도 드러난 것, 이제 마침내 그의 때가 다가왔다는 말이다.

 

강론의 시작은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절)라는 행동하는 사랑이었다. 이는 영광의 책(13장-19장) 전체로 이어지는 내용을 대표하는 표현이다. 요한은 예수께서 자신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셨고(1절), 최후의 만찬 때까지도 예수님과 함께 했던 가룟 유다는 그 마음이 예수님의 사랑의 대상에서 벗어난 상태였음을 밝힌다. 그의 마음은 이미 마귀가 정복한 상태였다는 것이다(2절).

 

공관복음서는 그 날 저녁 제자들 사이에 자기들 중에 ‘누가 제일 큰 자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음을 시사(示唆)하나 요한은 아예 그 내용은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리스는 요한이 제자들의 겸손하지 못함을 예수님의 강론을 통하여 가장 신랄하게 꾸짖고 있다고 했다.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세족식 사건을 예수님의 고별 강론 중 가장 먼저 다룬 것은 세족식이 그 다음 사건을 조정(調整)하는 중요하고도 의미심장한 사건인 동시에 속 좁은 제자들의 마음과 비교되는 사건으로 다룬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요한은 그 사건을 ‘예수님의 Endless Love’, ‘끝까지의 사랑’이라고 표현했다. 예수님의 의지적인 행동이었다는 뜻인데 ‘끝없는 사랑’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흥미딘딘 사랑교실’인가?(모 방송사의 ‘흥미딘딘 경제교실’을 감안한 표현.) 요한은 저녁 식사 전이 아니라 식사 도중에 일어난 사건으로 소개한다. 겸손의 모범을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인상적인 방법으로 보이셨다는 것이다. 선생이자 주가 되시는 예수님은 갑자기 조용히 일어나 옷을 벗어 옆에 두고, 한쪽 끝을 자유롭게 사용하기 위해 긴 수건을 허리에 두르는 종의 차림, 즉 가장 낮은 신분인 종의 차림으로 직접 냄새나는 제자들 하나하나의 발을 씻기셨다. 누가 더 큰지를 다투고, 출세 욕심만 갖고 있던 제자들에게는 엄청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놀람과 두려움으로 정적이 흐르던 그 때 정적을 깬 것은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6, 8절)”라는 베드로의 거절하는 소리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세족식이 단순히 겸손을 가르치는 이벤트가 아니라 ‘죄 씻음의 상징’임을 밝히셨다. 욕심 많은 베드로는 즉시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달라고 한다(9절). 예수님은 “이미 목욕한 사람은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10절)고 하셨다.

 

J.R.힐은 ‘이미 목욕한 사람’은 잔치집에 와서 발만 씻으면 되는 손님을 비유한 표현으로 그의 항구적인 특성을 지칭한다며 세족식은 예수님의 겸손뿐만 아니라 ‘그 몸에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는’(벧전2:24) 더 큰 겸손이라 했다. 베드로를 가르치시면서 가룟 유다의 배신을 아신 예수님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끝없는 사랑일 것이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최근글


인기글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