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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이 기쁨 되리라 _ 요16: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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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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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신기중앙침례교회

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58

 

예수께서는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7절, It is for your good that I am going away)며 조만간 있을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신다. 이미 몇 차례 하셨던 말씀(5, 10절, Now I am going to the Father)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고 성령을 보내겠다는 약속도 주셨지만 심란한 제자들은 여전히 혼미한 가운데 다락방에 모여 있다.

예수님은 주저 없이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16절, In a little while you will see no more, and then after a little while you will see me)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한 모습으로 서로 문의하기에 바쁘다. 그들은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도, ‘아버지께로 간다’는 의미도, 또 ‘조금 있으면’이라는 의미도 알지 못한다. 그저 아리송한 말씀으로만 여겨졌던 것 같다.

그러나 핵심은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의 진의(眞意), 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의 현현(顯現)으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예수님의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씀이 예수님의 임박한 죽음을 가리키는 말씀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모리스는 제자들이 당황했던 것은 이해되나 아무도 예수님께 직접 질문하지 않고 서로 문의한 점은 이상하다고 했다. 제자들이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에만 집중하여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은 헬라어 ‘에레곤’(ἔλεγον)을 볼 때 계속적 행위로 “저희들이 말하여 마지않는다.”로 보아야 한다고도 했다. 말만 무성한 오늘날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20절). 제자들이 해산(解産)의 진통과 흡사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어서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며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제자들의 필요에 상응하는 답변을 주신다. 요한복음에서 ‘진실로 진실로’ 뒤에는 늘 매우 중요한 말씀이 따르는데 무엇보다 ‘너희’와 ‘세상’이 대조적으로 구별됐다는 점이 시선을 끈다. 세상은 승리감에 도취하고, 제자들은 심각한 슬픔에 빠지겠지만 결국은 ‘근심이 기쁨 되리라’(your grief will turn to joy)고 하신다.

‘근심이 기쁨 되리라’, 슬픔 대신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된다는 말씀이다. 마치 산모가 진통하다가 해산함으로 얻는 기쁨과 같다고도 하셨다. 근심이 없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쁨으로 바뀐다는 것, 이는 가장 극심한 고통으로 슬픔을 주던 십자가가 기쁨의 근원이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님은 계속 제자들의 마음을 만져주신다.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영원한 기쁨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물론 다시는 슬픔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세상과 상관없는 기쁨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제 다시 ‘진실로 진실로’를 언급하며 ‘기도’를 강조하신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 하리라”(your joy will be complete). 말씀의 흐름을 보면 자신의 구속적인 죽음이 상황을 온통 새것으로 개혁하여 놓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의 이름, 즉 십자가상에서 이룰 그 승리의 이름으로 ‘근심이 기쁨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지내라고 당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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