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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와 떠나는 성경여행 – 요한복음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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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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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우 목사

 

십자가형(The Crucifixion)을 선고 받은 예수님, 예수님은 고대 세계가 고안해 낸 사형법 중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의 처형이 결정되었다. 십자가형은 로마인들이 노예나 반역 죄인들에게나 적용하던 사형법이며, 시세로(Cicero)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형벌”이라고 했던 가장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사형법이었다.

요한은 “스스로 자기의(for himself) 십자가를 지시고”라고 표현함으로써 예수께서 당시 사형수가 형구(刑具)의 일부 또는 전부를 형장까지 운반하는 관례에 따라 직접 십자가를 지고 가셨음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공관복음에서는 구레네 시몬이 중간에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간 것으로 기록했지만 요한은 세상의 구원을 홀로 완수하신 것을 강조할 의도로 스스로 지고 가신 것으로 묘사했다.

십자가가 세워질 장소는 ‘해골’(骸骨, 히브리어로 골고다)이라 했다. ‘갈보리’(Calvary)는 라틴어 ‘갈바리아’(calvaria)에서 온 것으로 그 뜻 역시 ‘해골’인데 모리스는 “그 곳 언덕의 모양이 해골 같기 때문이라는 견해와 처형된 희생자들의 해골들이 그곳에 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견해, 그리고 아담이 묻혀있던 곳이라는 견해 등 다양한 견해가 있지만 왜 그런 이름이 생겼는지 알 길이 없는데 신기하게도 ‘해골같이 생긴 곳’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고 했다.

요한은 다른 기록자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두 사람도 예수님의 좌우에 한 명씩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다. 바라바의 동료들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원수들은 예수님을 죄수들과 같은 자리에서, 죄수들과 함께 처형하면서 그들의 분노를 표출했지만 요한은 사실을 사실대로 기술하여 오히려 구속론적 의미에서 죄인들과 죽음으로 하나 되었음을 나타내려 한 것 같다.

요한은 “빌라도가 패(titulo)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다”고 했다. 당시의 관례에 따라 십자가 위에 죄인의 이름과 죄목을 적은 하얀 패를 달았던 것인데 흔히 창피를 주려고 사형수의 죄상을 열거한 패를 붙였던 것과는 달리 빌라도는 그 패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Jesus of Nazareth, The King of The Jews)이라고 썼다. 관례에 따라 아람어(그 나라의 언어)와 로마어(公告文의 언어)와 헬라어(로마 세계 어디서든 의사 전달이 가능했던 언어) 3개국 언어로 기록했는데 이는 마치 빌라도가 무리하게 예수님을 처형을 계속 강하게 촉구했던 무리들에게 냉소적 복수를 하고 있는 듯하다.

요한에게는 ‘예수님의 왕권’(the kingship motif)이 중요했기에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왕권’을 강조했다. 빌라도가 관정에서 예수님을 왕이라고 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듣지 못했지만 1세기에 죄수의 처형은 큰 구경거리였고, 예루살렘 가까운 곳에서 처형이 있었으며, 패가 3개의 언어로 기록되었기에 사람들이 쉽게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그 죄패를 오히려 온 세계에 보편성을 지닌 ‘예수님의 왕권’ 선포로 여겼다.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은 즉각 빌라도에게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라”며 표현을 바꾸어 달라고 강하게 압력행사를 했지만 빌라도는 “내가 쓸 것을 썼다”며 그들의 요구를 단칼에 잘랐다. 압력에 굴복하고 사형 선고할 때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요한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신 것마저 왕적 행사였다며, 이것은 그 누구도 변경할 수 없는 사실임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빌라도가 이 사실을 알고 썼는지 예수님을 조롱하고 경멸하려는 의도로 썼는지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고, 그저 예수님의 왕으로서의 통치가 십자가 위에서부터 시작된 것에만 집중했다. 요한에게 십자가는 예수께서 왕의 자리로 등극하시는 대관식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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