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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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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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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지인의 차로 치악산 근처를 드라이브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근처에 기독교성지가 있으니 가자고 제안했다. 의아했다. 기독교순례지라면 서울 망원동 양화진 절두산, 선교사 묘지, 수원 근교 제암리교회(삼일운동 관련), 여수 애양원(손양원 목사님 관련), 그리고 인천, 강화에 먼저 뿌리내린 기독교 유적지 등 외에 별로 알지 못하던 나였다. 그런데 원주 근교에 기독교성지가 있다니. 차는 신림 쪽으로 내리달아 어느 계곡으로 들어서는데 안내판에 “베론 성지”라고 적혀있었다.
성지는 잘 단장되어 있는 모습이 정성들여 가꾼 인상을 주었다. 도로를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가는데 가톨릭 분위기를 풍기는 동상들이 보였다. 관광차가 여러대 와 있어서 순례객들이 삼삼오오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국사시간에 외우던 천주교 박해, 황사영 백서사건 등의 단어들이 먼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황사영이 조정의 탄압을 피해 몸을 숨기면서, 청나라에 도움을 청하여 천주교도들의 피해를 막아보려 했던 편지를 썼던 바로 이곳이었다.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은 강변북로를 자주 달렸다. 그러다 어느 날 절두산에 눈이 갔다. 소설가의 예리한 시선에 역사의 한 풍광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소설 “흑산(黑山)”(도서출판 학고재, 2011)은 딱딱한 역사서술에 그냥 굳어버릴 뻔한 사건과 인물들에게 생명을 다시 불어넣었다. 정약용의 형제들, 큰 형의 사위 황사영, 주변 인물들을 통해 영적으로 척박했던 이 땅에 어떠한 고난 속에서 복음이 뿌리내리고 신앙이 발아되었는지 숙연한 현장을 엿보게 한다. 관군의 삼엄한 경계가 심장을 옥죄고, 급기야 포로된 자들의 목이 달아나는 형장에서 그들은 이렇게 기도했다. “... 주여 겁 많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부르지 마시고 우리들의 마을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소서. 주여, 주를 배반한 자들을 모두 거두시어 당신의 품에 안으소서...”
흑산은 어디인가?! 정약전이 유배당한 흑산도가 흑산일까, 목이 달아나는 형장이 흑산일까, 아니면 복음의 기쁜 소식을 사학죄인(邪學罪人)들의 망언이라며 짓누르던 조선의 땅이 흑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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