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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복음화|축의금 부의금 봉투를 기독교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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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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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 사용하고 있는 축의금 봉투, 부의금 봉투는 유교식으로 사용하고 인사를 하면서 기도는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나님께 드린다. 예의와 생활의 규범도 유교적 관습과 서양의 가치관이 혼합하여 만들어진 규범을 기독교식이라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사실 한국 교인들은 성경에 대한 지식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다. 각 개 교회에서 하고 있는 교육프로그램을 보면, 제자훈련, 영성교육, 알파코스, 전도 훈련, 속회교육을 알차게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교육의 홍수 속에 살아도 몸에 젖어 있는 전통의 습관 하나 제대로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가마솥에서 출발하여, 연탄불에서 석유곤로로, 천연 가스로, 식탁과 부엌을 바꾸어 가면서 새롭게 단장 했다. 요즈음 현실은 전기밥솥의 밥이 지어지는 시간을 못 기다리고 더 빠른 인스턴트식사로 대신하는 시간 속을 달리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옛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축의금 부의 봉투다. 모든 것이 다 변화하고 진화 했는데도 변함없이 옛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한 세기, 100년이 넘게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울부짖으며 기도를 했다. 그런데 입안에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사를,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입안에 머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제부터라도 관리하고 가르치려는 자세에서 내려와 겸손한 마음으로 함께하는 삶의 가짐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하하고 하나님께 장래를 빌어주는 마음의 봉투로, 예수님이름으로 위로하고 슬픔을 함께 나누는 정성의 봉투로,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걸 맞는 봉투로 바꾸어 하나님의 영광을 빛내봅시다. 성도들의 관계에 새로운 신앙의 메시지도 자부심도 실어보자. 이것이 받은 은혜에 비하면 하찮게 보일 지라도 섬기는 자세로 실천하여 보자. 옛날 어려운 우리의 살림살이를 부요하게 만든 것은 돈이 아니라 새벽을 깨워 내 집 앞을 깨끗하게 하는 청소가 오늘의 경제 대국을 만들었다.

새벽기도는 한 세기의 핵을 긋는 기독교 부흥의 초석이 되었다. 세계 제일의 큰 성전을 건축하는 주춧돌이 되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문명은 생활의 편리함을 초월하여 인간을 감시하고 기억력을 쇠퇴시키는 지경까지 이르고 있다. 나날이 발전하고 새로워지는 생활문화는 어제와 오늘을 구분할 정도로 변화된 모습으로 밀고 들어오고 있고 습관화 되어가고 있다. 보수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신세대에서 밀려 퇴물 취급을 받는 요즈음이다. 북유럽의 기독교가 힘을 점점 일어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멀리서 바라보면서 안타깝게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필자는 감히 문화의 부재라고 말하고 쉽다.

지나온 역사를 보면 옛날에는 모든 문화를 종교가 이끌었으며 새 문화를 만들어 보급했다. 그러나 지금은 종교는 뒷전에 있고 과학기술의 첨단문화와 유흥의 문화가 날로 시간이 다르게 신종 어를 만들어 내며 우리의 생활 리듬에 맞추어 리드해가고 있다. 새로운 것만 찾는 인간의 속성에 잘 부합되기에 누구나 거부반응 없이 따라 가고 순종한다. 종교적인 생활문화는 뒤늦게 인정하고 마지못해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앙심의 척도에 따라 하나 둘 이탈하는 것도 같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성전을 박물관으로 바라보는 것이 오늘의 북유럽의 현실이 아닌가 싶다. 이것을 남의 일처럼 생각을 할 때도 간혹 있다. 성경말씀에도 출애굽 하는 과정의 말씀에 있듯이 우리에 관습과 전통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가혹한 벌로 다스리고 심판하신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다. 오늘의 한국교계를 바라보면 누구나 쉽게 느끼고 감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크고 굵직하고, 명문에 억매이지 말고 초대교회로 돌아가 아주 작은 것부터 그리스도 정신을 몸에 익혀야 할 것 같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놀이문화 게임문화는 날로 그 시장이 천문학적인 숫자로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맞설 복음의 생활문화가 시급하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사회 각 분야가 활발하게 변해가고 있다. 우리의 성도간의 교통은 막혀만 가고 있다. 관혼상제 때에 팔 걷어 부치고 내일처럼 도와주고 협력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그 아름다운 모습마저 상조회사 서비스에 내어주고 먼발치로 바라만 본다. 순간의 몸은 편안하겠지만 훈일은 비싼 대가를 지불 할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 흐르고 있는 유교적 규범과 문화를 복음화 하지 못하면 더 이상 주님 곁에 다가서기가 힘들 것이다. 옛날 한자에 박식한 사람은 지성인이었고 언문만 아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오늘은 한글로 세상과 소통하고 세계 40개국 3000천개의 대학에 한글학과 있고 한글을 배우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하여 보급하니 하나님께서 한글이란 새 이름을 주시니 그 이름의 존귀함이 손끝에 맺히니 IT 기술로 온 인류와 소통하는 것은 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 믿는다. 이제 우리는 기독인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 되어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축의금, 부의 봉투부터 복음화로 통일하여 사용하자. 예수그리스도를 생활에서 신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 보자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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