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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한 놈은 교회서도 할 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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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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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외면한 사람들 외면한 이야기들

대학생들과 청소년 시절 교회 활동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다. 공부 잘한 학생들과 공부 못한 학생들의 이야기가 함께 나와서 흥미 있게 들었다.
“공부 못한 학생이 고3이 되었는데 교회생활에 충실하면 실없는 놈이 되어 버려요. 암묵적으로 공부도 못한 게 공부도 안하고 교회에만 있는다고 눈치를 주죠. 그래도 온갖 잡일은 우리가 다 했어요.”
“공부 잘한 학생들은 공부하느라고 주일대예배만 참석해도, 공부하느라고 바쁜데 예배도 참석한다고 칭찬이 대단하죠. 아예 주일날 예배 안나와도 대학입시에서 일류대학에 보란듯이 합격하면 과거 교회생활은 다 용서돼요”
목사님은 설교 중에 공공연히 하나님이 축복하면 공부도 잘한다고 말씀하시죠. 그러는 순간 우리는 저주 받은 놈이 되어 버리죠. 그래도 그 시절에는 교회밖에 갈 곳이 없었어요. 부모님이 직분자이면 창피하다고 하죠. 내가 공부 못한 걸 부모님의 신앙과 결부시키기도 하죠. 부모님이 교회에 안다니는 얘들에게는 부모님이 기도해주고 그러는데, 부모님이 기도도 안해주니까 그런다고는 식의 말도 하죠.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공부 못하면 다른 사람 다른 친구들이 볼 때 본이 안된다고 설교에 많이 말씀하시는데 그럴 땐 우리 마음은 황당하게 되는거죠.
이러한 내면의 이야기들이 학생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말할 곳이 없어서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만난 이들이 대학생들이니까, 내가 목회자 신분이 아니라 그들과 놀아주는 처지이니까, 거리낌 없이 지난 이야기를 하지만, 지금도 교회에 있는 학생 가운데는 모든 게 자기 잘못인 냥 숨죽이며 살고 있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부자를 축복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을 축복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배려가 없는, 아니 함께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하는 이러한 행동은 비주류 인생들에게는 폭력이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 공부란 부와 직결되는 통로다. 그래서 하나님을 팔아서라도 공부시키려고 하는 부모들이 있다. 그런데 교회까지 세상에 덩달아 부화뇌동하는 것은 아무리 상식적으로 좋게 봐주려고 해도 좋게 봐줄 수가 없다.
공부 못하는 학생, 가난하게 사는 인생이 단지 마이너리티였을 때는 상관없다. 그러나 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주류가 되었을 때, 자신들의 처지가 자기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라고 각성하였을 때, 그들은 조용히 교회를 떠날 것이다. 혹은 개인으로서 어쩌지 못한 벽이라고 느꼈을 때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2000년 부모를 살해한 이은석 군부터 최근 자실한 과학고 이모군(2005.4.12일자 경향)에 이르기까지 다 교회에서 착하디착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꼭 교회 다닌 학생들만 우리 아이들이 아니다. 이 땅의 모든 학생은 다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계속 죽게 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단지 교회 다니지 않은 학생이 죽으면 우리 책임이 없는 것인가? 다 이 한국이라는 슬픈 자화상 속의 모습들을 함께 아파하고 함께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가 김일성만 맹신하던 북한을 비웃듯이 먼 후일 공부 때문에 죽게 되었던 이 시대와 교회를 비웃을지 누가 아는가?
교회여!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공부 걱정없이 해맑은 청소년기를 보내주는 일을 진정 기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직도 한 사람의 축복받는 자를 위해 남은 학생을 ‘시다바리’ 로 만들 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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