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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교육, 절망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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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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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는 대학생들을 상담할 경우가 많이 있게 되는데 하루는 어느 졸업을 앞둔 대학생을 상담할 때이다. 자기는 부모가 오랫동안 별거중이고 자기도 사귀는 남자가 있는데 결혼할 자신이 없어 헤어지곤 한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본 가운데 그 학생의 내면에는 결혼에 대한 두려움과 남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더 깊은 곳에 그 학생을 사로잡고 있는 교리 가운데 하나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론’이라든가 ‘가족치료적 관점’에서 오는 가족의 병리적 진단론에 사로잡혀 자신은 결혼해도 불행해 질 수 밖에 없다는 신념이 있었다.
우리는 성경의 내용을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희망적인 메시지를 혹은 부정적인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주입시킬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죄에 대한 강조와 가족에 대한 강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병리적으로 몰아가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럴 수도 있지’보다 ‘그러면 죄’라는 메시지를 일생을 통해 듣게 된다. 그런데 사는 것 자체가 죄 아닌 것이 어디 있던가?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서 피교육자들이 잘되기를 바라고 가르쳤겠지만 결과는 자존감 상실과 어찌할 수 없는 절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기도해도 안되는 현실의 벽 앞에 좌절과 절망을 씹으며 자기혼자만의 고통을 짊어지며 살게 되는 것이다.
집나간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십 수년간 기도하는 딸과 하나님이 계시다면 부모를 데려와 달라고 울부짖는 아이들 이혼한 부모 때문에 부당한 괴롭힘에도 저항하지 못하여 속으로 우는 아이들의 소리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그들에게 가정이 중요하고 신앙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외쳐도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에게는 위로의 메시지가 못된다. 죄를 짓고 실수도 하는 게 인생인데 그 인생을 용납하지 못하게 될 때 그들은 이미 우리가 교회 밖으로 내몰고 있는지 모른다.
가정의 위기 때문에 가정사역의 중요성이 대두되었지만 그러한 가족중심의 사고방식이 기독교 교육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 뒤돌아봐야 할 때이다. 오히려 그런 집단주의 문화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신앙 고백과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 우리가 되돌아보아야 할 숙제이다.
가정이 아무리 허물어져도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시고 나의 가족이 교회라는 따뜻한 사랑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를 원하고 있다. 주변이야 어찌됐든 건강한 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갖기를 원한다. 이혼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질병과 사고로 홀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아지는 이 때에 그들에게 절망의 메시지를 계속 던질 것인가? 희망의 메시지를 던질 것인가?
한 번도 성교육을 받아보지 못하고 혼전 순결만 알고 있는 학생들이 교리교육으로 자신의 순결을 지켜낼 수 있다고 보는가? 아직도 순결을 바친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무의식적 신념으로 불행한 결혼을 하게 되는 크리스천들은 없다고 보는가? 과정은 없고 뻔한 답만 강요하는 교육 속에서 학생들은 더욱 불행으로 내몰려지는 현상을 우리 기독교 교육자들은 보지 않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전문가(지도자)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진단하고 있다. 이래서 죄인이고 저래서 문제라는 것을 성경적 이론뿐만 아니라 일반 학문 이론을 들어서 이야기 한다. 그러나 진단은 치유를 동반하지 않는 이상 지도자의 자기만족적 이론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교육지도자들은 그러한 우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정확한 진단은 회복의 전망과 함께 수반되어져서 사람들에게 선포되어지고 교육되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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