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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 부는 치유열풍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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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기독뉴스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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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어느 청년을 위탁받았다. 위탁받았다는 뜻은 상담실에서 상담만으로 그를 도울 수 없기 때문에 심리치료 프로그램으로 위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게 온 그 청년은 말이 없고 대단히 조용했으며 말을 해도 낮은 톤으로 얘기하는 대단히 진중한 청년이었다.
그의 이러한 태도를 보아서는 그가 신앙이 매우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랐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한 번도 아버지의 권위에 반항하지 못하였으며 그 반항은 곧 하나님에 대한 항거임으로 그가 택한 유일한 대책은 교회를 나가지 않는 것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어떻게 아버지에게 대들며 하나님에게 항거할 수 있겠는가? 그런 그는 자연스럽게 강박적 질환을 가지게 되었고 소리치고 싶어도 소리치지 못하는 청년이 되어버렸다.
치유드라마에서 간신히 했던 말이 아버지가 근무지를 옮길 때마다 헤어지게 되는 친구들의 손을 놓지 못하면서 아버지를 따라 가기 싫다는 말뿐이었다. 하나님에게 하고 싶은 말은 꺼내지도 못하였다. 자기도 소리치고 욕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안 된다고 했다.
이런 청년이 어디 이 뿐이겠는가? 한번은 프로그램에 참가한 학생이 외치던 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하나님 솔직히 할 말 있는데요? 전 하나님이 안 믿겨져요 그런데 잘 믿는 것처럼 하려고 이제껏 살다보니 이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멍해요” 이러한 외침을 했던 이 학생도 목회자 가정의 자녀였다.
또 한 청년은 각종 치유프로그램을 전전하며 자신의 불안증을 벗어나려고 노력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의 질환이 다 치유되었다고 간증을 6번이나 했다고 하였다. 물론 한 곳에서가 아니라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는 기도원과 치유집회를 통해서였다.
집회를 가면 인도자의 현란한 말과 감정의 폭발로 믿게끔 하거나 자신도 나은바 되었다는 확신을 갖고 싶어서 울면서 간증을 하게 되는 것을 보곤 한다. 주최 측에서도 어떻게든 치유 받았음을 확신시킨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께 영광이고 개인에게는 치유의 체험이라고 말을 한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거나 고통을 그렇게라도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확신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머뭇거려진다. 술을 먹고, 중독증처럼 성에 탐닉하고, 아무 목적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 행위에 대해 아무 말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아직 복음에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그런 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하나님께 변론할 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라 열렬한 신앙이 있어서 기독교의 치유집회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는 치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병원을 의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는 교회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말 할 수 있는 곳도 없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받아줄 곳도 없다. 교회에 강의나 프로그램을 인도하기 위해 가서 항상 묻는 말이 있다. 당신의 교회는 가면을 쓰고 다니는 곳인가 가면을 벗고 갈 수 있는 곳인가?
어느 권사님들 모임에서 권사님 한 분이 이렇게 말하였다.
왜 인간에게 말해요? 하나님에게 말하면 될텐 데...
그럼 권사님은 교회를 다니면서 성도님들에게 자신을 얼만큼 보였다고 생각하세요?
한 20%......
무엇이 바른 것인지 난 아직도 질문할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교회들이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돌보고 위로해야 할 사람이 분명히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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